우리의 경험과 마음을 프로그래밍할 수 있을까? 불멸을 향하여 유익 흥미로운 한글 외신



*출처(클릭)

Mark O'Connell
2017년 3월 26일

California의 급진적 과학자와, 그들을 후원하는 억만장자들은 인간의 수명을 기술을 통해 연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말하는 기술이란, 인간의 마음을 기계에 업로드하는 방법을 말하며, 불과 몇 년 후면 실현될 것이라 이야기한다.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 보겠다.
당신은, 정상적인 판단이 가능한 정신 상태로 수술대 위에 누워 있지만, 신체 자극을 느낄 수 없거나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이다. 당신의 옆에 인간형 기계(로봇)이 나타나 정해진 순서에 따라 작업을 시작한다. 이 기계는 사무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당신의 두개골 후면에서 큰 조각의 뼈를 들어낸 후, 거미 다리처럼 정교하고 섬세하게 손가락을 점성이 있는 당신의 뇌 표면에 조심스럽게 올린다. 이 시점쯤 되면, 당신은 이 절차에 대해 불안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을 잠시 무시하자.

당신은 이 일이 깊숙이 관여하게 되었다. 이제 퇴로는 없다. 이 기계는 고해상도 현미경 수용기를 사용해 당신의 두뇌의 화학적 구조를 스캔하고, 수술 옆 고기능 컴퓨터로 데이터를 전송한다. 이제 인간형 로봇의 손가락은 당신의 대뇌 물질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 뉴런 속 더 깊은 계층을 스캐닝하고, 끝을 알 수 없는 복잡한 상호 관계에 대한 3차원 지도를 구축하고, 컴퓨터 하드웨어에서 이러한 활동을 모델링 할 코드를 작성한다.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또 하나의 기계 부속물이 나중에 처리할 수 있도록 스캔한 물질을 생물학적 폐기물 컨테이너로 옮긴다. 스캔된 물질이므로, 당신은 더 이상 이 물질들을 사용하지 않게 된다.

어느 시점이 되면, 당신은 자신이 더 이상 당신의 신체 내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슬픔이나 공포 혹은 몸에서 분리된 호기심과 함께, 폐기된 고깃덩어리에서 더 이상 의미를 가질 수 없는 마지막 경련(convulsion)이 당신의 신체에서 사라져 가는 것을 관찰하게 된다.

이제 동물로서의 삶은 끝나고, 기계 속에서의 삶이 시작됐다.

이것은 Carnegie Mellon의 인지 로봇 교수인 Hans Moravec이 그의 1988년 저서 ‘Mind Children: The Future of Robot and Human Intelligence’에서 개략적으로 작성된 시나리오이다. Moravec은, 향후 인류가 이러한 절차에 따라 자신의 생물학적 신체 대부분을 처분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이러한 시나리오는 다수의 트랜스 휴머니즘(과학과 기술을 이용해 사람의 정신적, 육체적 성질과 능력을 개선하려는 지적, 문화적 운동) 지지자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믿음이다. 트랜스 휴머니스트들은 동물인 우리보다 더 나은 상태로 신체와 정신을 개선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마음 업로딩이란 아이디어의 저명한 지지자인 Ray Kurzweil은, 그의 저서 ‘The Singularity Is Near’에서 “전자 시스템에서 실행되는 인간 두뇌의 에뮬레이션(emulation; 다른 컴퓨터의 기계어 명령대로 실행할 수 있는 기능)은 생물학적 두뇌보다 더 빠르게 작동한다. 인간의 두뇌가 대량의 병렬 처리(거의 동시에 작동한다 생각되는, 10조 회의 신경 세포 간 연결로 발생한 명령)로부터 이익을 얻고 있지만, 그 연결이 없는 시간에는 현대의 전자기기에 비해 극단적으로 느리게 움직인다”라고 기술했다. 그는 2030년대 초가 되면, 그와 같은 emulation에 필요한 기술 - 충분히 강력하고 수용 능력이 큰 컴퓨터와 충분히 진보된 두뇌 스캐닝 기법들 - 이 사용 가능하게 될 것이라 말한다.

이 이야기는 극소수 사람들만의 주장은 아니다. 우리는 지금 근본적으로 연장된 인간의 수명은 물론, 근본적으로 확장된 인지 능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끝없는 복제와 자아의 반복적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절차를 거치게 되면, 아마도 당신은 당신 자신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 유효할 때까지, 한계 없는 가능성을 지닌 실체로서 존재하게 될 것이다.

Bay Area transhumanist conference에서 나는 Randal Koene와 처음 대면했다. 그는 conference에서 연설하진 않았지만, 개인적 관심을 넘어 참여하고 있었다. 40대 초반의 유쾌한 성격을 가진, 내성적 성격의 그는, 오래도록 영어를 사용한, 비 영어권 연사의 격식 갖춘, 똑똑 끊어지는 말투로 말했다. 우리는 헤어지며 명함을 교환했고, 그날 밤저녁 난 그의 명함을 찬찬히 살펴봤다. 그의 명함에는 정형화된 뇌를 스크린에서 보여주는 랩톱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 아래에는 의미심장해 보이는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Carboncopies: 기질에서 독립된 마음으로의 현실적 노선. 설립자 Randal A Koene”.

나는 노트북을 꺼내어 Carboncopies의 website에 접속했다. 거기서 나는, “신격 조직과 완전한 두뇌의 분해 공학을 발전시키고, 기질 독립적 마음(Substrate Independent Minds)라 부르는 것을 창조하여 마음의 기능을 복제하는 전뇌 에뮬레이션 및 신경보정술(neuroprostheses) 개발을 목표로 가진 비영리 단체”라는 글을 보았다. 내가 이 ‘기질 독립적 마음’이란 용어를 이해하기에는, 이 조직은 생물학적 두뇌가 아닌 다른 운영 기질 내에서 사람마다 다른 마음과 경험 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기질 독립적 마음은, 마치 플랫폼 독립적 코드가 다양한 컴퓨팅 플랫폼에서 컴파일 되고 실행되는 과정처럼 이해됐다.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나는 Kurzweil이 ‘The Singularity is Near’에서 개괄한, 두뇌 업로딩 시나리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던 사람을 만난 것 같다. 그리고 이 사람은 내가 내가 알게 되어야 했던 사람이었다.

Koene은 상냥하고 매우 설득력 있는 사람이었고, 그의 대화 내용은 무서울 정도로 지적이고 컴퓨터 신경 과학이라는 매우 희귀한 분야에서 일한 사람을 비정상적으로 사로잡는 화제였다. 그래서 그의 회사 사이트에서 나는 종종 그가 하고 있는 일이 거의 생각할 수 없는 함의라는 것, 즉, 그가 나에게 설명하고 있는 일이 심오하고 형이상학적인 초자연적인 일이라는 것을 잠시 잊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는 그의 전 부인과의 행복하고 화기애애한 관계나 유럽과 미국 과학 공동체 간의 문화적 차이같이 약간 관계없는 이야기를 할지도 모르고, 나는 천천히 묘한 불안감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그의 일이 그가 목표로 하는 결과를 이루어낼 것이고,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 이래 가장 의미 있는 사건이 될 것이라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 확률은 아직 먼 미래의 이야기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과학의 역사라는 것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승리의 기록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어느 이른 봄 저녁, Koene은 그가 살고 일하는, 토끼에 둘러싸인 임대 목장 저택이 있는 North Bay에서 San Francisco로 차를 몰고 Columbus Avenue의 작은 아르헨티나 식당으로 와 나와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그의 말투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악센트로 그가 네덜란드인인 것을 알게 됐다. Koene는 Groningen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Haarlem에서 보냈다. 그의 아버지는 입자 물리학자였고, Winnipeq에서 재직한 2년 기간을 포함해, 어떤 실험용 원자력 시설에서 다른 원자력 시설로 자주 옮겨 다녔다. 

소년 같은 매력을 지닌 이 43세의 남자는, 지난 5년 동안 California에서만 살았으며, 그는 이곳을, 그의 유목 생활에서 만난 진정한 집 혹은 가장 집과 가까운 것으로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기간은, 역사적으로 급진적 아이디어가 거대한 매출을 낳은, Silicon Valley에 집중된 원천으로부터 퍼져나가 Bay Area 전체를 휘감은 기술 진보주의의 문화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가 자신의 일을 누군가에게 설명했을 때, 지금까지도 그가 오해를 할 만한 농담을 했다고 생각하거나 대화 중간에 화가 난 것처럼 자리를 벗어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10대 초반, Koene는 뇌가 가징 주요한 문제를 컴퓨터적 측면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즉, 두뇌는 컴퓨터처럼 읽고 다시 쓸 수 없다. 인간은 뇌 속에 접속하여 개선할 수 없고, 코드 라인을 추가하는 것처럼 뇌를 보다 효율적으로 실행되게 만들 수 없다. 또한 컴퓨터 프로세서에 행하는 것처럼, 뉴런의 작동 속도를 향상시킬 수 없다.

이 무렵, Koene은 Arthur C Clarke의 The City and The Stars를 읽었다. 이 소설은 지금으로부터 10억 년 후를 배경으로 설정하여, 폐쇄 도시 Diaspar가 초지능적 중앙 컴퓨터에 의해 지배되고 있고, 그 중앙 컴퓨터는 사람들이 영원히 살 수 있도록, 사망한 사람들을 위한 신체를 창조하여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의 기억과 추억을 창조된 신체의 메모리 뱅크에 저장한다는 이야기다. Koene은, 이 황당한 이야기를 읽으며 특이할 만한 것을 발견했거나, 난 절대 이런 일을 하지 않겠어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보무님은 그가 이런 기이한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음에 오히려 용기를 불어 넣어줬고, 인간의 마음을 하드웨어에 보존한다는 과학적 전망은 정기적인 저녁 식사 대화 주제 중 하나가 됐다.

생물학이 아니라 수학 및 물리학 분야에서 전업자를 탄생시킨 계산 신경과학 분야는 마치 마음을 mapping 하고 uploading 하는 문제에 대한 가장 있을 법한 접근법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계산 신경과학은, 그가 동일한 분야에 관심을 가진, 느슨한 집단을 인터넷에서 발견한 1990년대 중반까지는 존재하지 않은 분야였다.

Montreal의 McGill University에서 계산 신경과학 박사 과정 학생이 된 Koene는, 처음에는 자신의 연구 분야가 환상주의자가 기인들이 참여하는 분야라고 오해를 받을까봐 자신의 연구에 대한 근본적 동기를 밝히길 꺼려했다.

“숨기려 한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마음을 컴퓨터에 uploading 하고 싶다고 쉽게 말하지도 않았다. 나는 전뇌 emulation용 전체 road map에 꼭 들어맞게 하는 방법을 알아낸다는 생각을 가지고, memory encoding 같은 관련 분야 사람들과 협력했다.”

그는 Peter Thiel이 자금을 댄 Silicon Valley 유전자 시퀀싱 및 나노 기술 스타트업인 Halcyon Molecular에 근무하면서, Bay Area에 머물며 자신이 오랫동안 헌신해 온 대의명분을 목적으로 한 비영리 기업인 카본 카피(carboncopies)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그의 결정은, 그에게 남은 생애가 많지 않으며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만일 그가 대학 내에서의 연구를 선택했다면, 최소한 재직 기간이 확보될 때까지 그의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이 조직한 기업과 기껏해야 약간의 접점이 있는 프로젝트에 쏟아부어야 했을 것이다. 그가 선택한 길은 한 사람의 과학자에게는 힘들 일이었고, 다음 단계를 향해 소규모 민간 투자의 지원을 받으며 생활하고 일했다.

하지만, Silicon Valley가 가진 급진적 기술 낙관주의란 문화는 그가 자신의 일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이 됐고, 야생에 가까운 출세 지향적 윤리관 속에 자리 잡은 프로젝트에 재정적 뒷받침의 근원이 되었다. 그곳엔 썩 괜찮고, 돈이 많으며,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에게 있어 인간의 마음을 컴퓨터에 uploading할 수 있는 미래는, 자금 투입을 통해, 적극적으로 추구되어야 할 목표이고, 기존 개념을 와해할 정도의 혁신이 있으면 해결될 문제였다. 

자금을 투입한 사람 중 하나가, 36세 러시아 기술 분야 백만장자이자, “인간의 개성을 보다 진보된 미 생물학적 운송 수단으로 이전할 수 있게 하고, 영생을 포함한 삶을 연장하게 할 기술을 창조하자"라는 목표를 가진 2045 Initiative의 설립자인 Dmitry Itskov였다. Itskov가 진행하는 프로젝트 중 하나가, “아바타”의 창조였으며, 이는 정신을 uploading 하는 것과 상호 보완될 기술인 두뇌-컴퓨터 간 Interface를 통해 제어되는 인조인간형 신체였다. 그는 Carboncopies에서 진행되는 Koene의 작업에 자금을 댔고, 2013년 그들은, 홍보물에도 나와 있듯, “인류를 위한 새로운 진화 전력 논의”를 목표로 한 Global Futures 2045 New York Conference를 조직했다.

이 기사가 작성될 무렵, Koene은 또 다른 기술 기업가인 Bryan Johnson과 함께 일하고 있었다. 그는 2년 전 자동 결재 기업을 PayPal에 $8억에 매각했고 현재 OS Fund라 불리는 venture capital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이 venture capital 회사는, 그 회사 website에 나와 있는 것과 같이, “삶의 운영체제를 다시 작성하는 비약적 발전 발견을 위해 일하는 기업가에게 투자”하는 회사이다. 이 말은 나에게, Bay Area centre 밖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인간 경험을 향한 태도에 어떤 결정적인 것 -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으로 전이된 소프트웨어 상징들의 집합 - 을 들어냈다는 측면에서 이상하고 불안정하게 들렸다.

그리고 이 말은 Koene의 프로젝트 핵심에 놓인 필수적 상징과 동일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인간의 정신을 인간 신체라는 플랫폼 위에서 실행되는 응용 프로그램으로서의, 한 조각의 소프트웨어로서 여기고 있다는 점이 동일했다. 그가 “emulation”이란 용어를 사용할 때는 그 의미를, PC의 운영 체계가 Mac 상에서 emulating 될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는 인간의 정신을 “platform 독립적 code”라고 불렀다.

전뇌 emulation과 관련된 과학은, 예상대로, 소름 끼칠 정도로 복잡하고 그 해석이 아주 모호하지만, 내가 여기서 지나치게 단순화할 위험을 무릅쓴다면, 나는 다음과 같이 이 idea를 생각할 가능성이 있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먼저, 당신은 우선 실현 가능한 어떤 기술 혹은 기술 조합(nanobot, 전자 현미경 등)을 통해 개인의 두뇌 - 뉴런들, 뉴런들 간 끊임없이 분기되는 연결들, 인간의 의식이 부산물로 보이는 정보 처리 활동 - 에서 특정 상황에 맞는 정보를 스캔한다. 스캔된 내용은 대상 두뇌의 신경 네트웍을 재구성하는데 필요한 청사진이 되고, 그 청사진은 컴퓨터 모델로 변환된다. 마지막으로, 제3의 비 신체 기반 기질 위에서 이 모든 내용을 emulating 한다. 이 비 신체 기반 기질은 Natasha Vita-More의 Primo Posthuman 같이, 인간이 쌓아온 구체적 경험을 재구성하고 확장하도록 설계된 슈퍼컴퓨터거나 인간형 기계 같은 것이라 이해할 수 있다.

내가 그에게 인간의 신체 외부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문의할 때마다 - 나는 여러 번, 다양한 방식으로 질문했다 - 나에게 지적한 것과 같이, 기질 독립성에서 중요한 점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신체와 같은 기질이나 매개체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transhumanist들이 “형태학적 자유” - 그 어떤 신체 형태 기술 허가라도 취할 자유 - 라고 말하는 개념이었다. 

1990년대 중반 발표된 Entropy 잡지의 uploading 관련 기사와 같이 “당신은 원하는 어떤 형태든 될 수 있다”. “당신은 크게도 작게도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당신은 공기보다 가벼워져 날 수도 있고, teleport될 수도 있으며 벽을 통과할 수도 있다. 당신은 사자, 영양, 개구리, 파리, 나무, 수영장, 혹은 천장에 바를 페인트가 될 수도 있다.”

내가 이 idea에서 정말로 관심을 기울인 것은 (비록 충분히 단호하게 하나하나 체크를 했지만) 이 idea가 얼마나 이상하고 설득력이 없는지가 아니라, 오히려, 이 idea가 근본적으로 인식 가능할 지, 그리고 얼마나 보편적으로 여겨질지였다. Koene과 대화할 때, 나는 주로 프로젝트의 타당성과, 그가 바람직한 결과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러한 시도 후에 우리는 헤어질 것이고 - 나는 전화를 끊거나, 자리를 떠나 가장 가까운 역을 향해 걷기 시작할 것이다 - 전체 프로젝트에 의해 나 자신이 이상한 영향을 받아 이상하게 움직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역설적이게도 그리고 명확하게도, 인간은 신체 형태로부터 행방되려는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WB Yeats의 Sailing to Byzantium을 종종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하는데, 이 나이 든 시인은 약해지는 신체, 병든 마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 - 인공적이고 불멸의 형태를 가진 기계 새를 위해 “죽어가는 동물”을 버리는 것 - 에 관해 쓰고 있다. 그는 “일단 자연에서 벗어나면, 나는 결코 타고난 신체가 아니라 그리스 금세공인이 만든 신체를 취할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어느 날 저녁, 나는 Folsom Street에 있는 combination bar/세탁소/standup comedy 무대가 있는 건물 밖에 앉아, 내 정신을 어떤 기술적 기질에 uploading 한다는 생각에 매력은 둘째치고, 심지어 소름까지 돋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고 Koene에게 고백했다. 기술이 내 인생이 미치는 영향은, 애증이 엇갈리는 어떤 것이라 할 수 있다. 편의와 “연결성”에서 내가 얻은 모든 것에 대해, 나는 세상 속에서의 나의 움직임이, 이익을 얻기 위해 우리를 축소하는 수단으로서 인간의 삶을 데이터로 축소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 기업에 의해 얼마나 조정되고 제한되고 있는 지 점차 알게 됐다. 

우리가 “무언가를” 먹고 마시고, 사람들과 로맨틱한 만남을 가지며, 바깥세상에 대한 뉴스를 읽은, 이 모든 행위들이 보이지 않은 알고리즘의 영향을 점점 더 많이 받고 있었고, 게다가 이러한 조직들의 창조물과, 조직과 정부가 연루된 이야기들은 우리 시대에 관한, 은닉된 도시 괴담 같아지고 있다. 자율적 자아라는, 빈약하기 짝이 없는 자유주의자의 이상이, 의심의 안개 가득한 역사 속에서 반쯤 기억나는 꿈처럼 아득해지는 이 세상을 감안한다면, 결국, 기술과 인간의 급진적 융합이라는 생각은, 결국 인격(personhood)은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최종적으로 조건부 항복(capitulation)에 이르지 않을까?

Koene은 머리를 끄덕이며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는 “당신의 말을 들으면, 우리의 아이디어를 보통 사람에게 설명할 때 큰 허들을 만날 것 같다. 나는 당신보다는 이 아이디어를 가볍게 생각하지만, 그것은 내가 이 아이디어에 오래도록 노출되어 이제 막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San Francisco에서 돌아오고 나서도 한동안 내 머릿속은 전뇌 emulation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코감기와 숙취로 고생한 어느 날 아침 난 Dublin의 집에 있었다. 옆방에서 Buckaroo를 하는 아내와 아들과 어울릴까 말까를 나른하게 고민하며 난 침대에 누워 있었다. 나는 코감기, 숙취 같은 상황이 정신과 육체 간 약간의 이격을 만들어낸다고 느꼈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종종, 나 자신이 더 이상 단순화하기 어려운 생물학적 객체, 즉 살과 피와 연골의 집합체 같았다. 코는 막혀 있고, 목은 박테리아로 황폐화됐으며, 두개골 안쪽은 깨질 듯 아픈 유기체일 뿐이라 나 스스로를 인식했다. 정말 내 기질은 똥 같았다.

그리고는 갑자기 호기심에 사로잡혔다. 이 기질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그리고 기술적으로 말해서 나 자신은 무엇인지. 난 내 폰을 집어 들어 구글에 “인간이란 무엇인가”라고 검색어를 입력했다. 그러자 처음 나타난, 3 가지 자동 완성 검색어는 “인간 지네(Human Centipede)란 무엇인가”, “인간의 신체는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나”, 그리고 “인간의 조건은 무엇인가”였다.

지금 내게 답을 얻고자 한 것은 두 번째 질문으로, 이는 아마도 세 번째 질문의 back door(백 도어)가 될 수도 있겠다. 이 질문에 따르면, 내 몸의 65%는 산소이고, 다시 말해 나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것이 공기이며 나머지는 별거 없었다. 그 외 구성 요소 표를 함유량 순으로 쭉 따라 내려가면, 탄소와 수소, 칼슘과 황, 염소가 나를 구성하고 있었다. 내가 이 정보를 추출해 내는데 사용한 iPhone을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난 내 구성요소를 보고 약간 놀랐다. 그 외 내 몸에는 구리와 철, 실리콘 같은 미량 원소가 들어 있었다.

인간을 하나의 작품이라 했을 때, 내가 생각하기에는, 먼지의 화신(a quintessence of dust)인 것 같다. 

몇 분 후, 아내는 아들을 등에 태우고 기어서 침실로 들어왔다. 아들은 작은 주먹으로 아내의 셔츠를 단단히 잡고 있었다. 그녀는 “다그닥 다그닥” 말 달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고, 아들은 “워워(날 뛰지마)!”라며 웃으며 소리치고 있었다.

히힝 말 울음소리를 내며, 아내는 자신의 등을 활처럼 구부려 신발 한 켤레가 걸린 벽 쪽으로 그를 굴려 보냈고, 그는 재밌다며 소리를 지른 후 다시 아내의 등 위로 기어 올라갔다. 이런 기억들은 코드로 짤 수 없을 것이다. 다른 어떤 기질 위에서도 실행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아름다운 광경은, 인간의 신체가 있어야 가능하고, 매우 심오한 감각이며, 가장 슬프고 아주 멋진 감각이었다. 

내가 내 아내와 아들을 포유류라 생각했다면, 난 더 이상 내 아내와 내 아이를 사랑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포유류로서의 존재에서 벗어나, 침대 밖으로 나가 그들의 놀이에 합류했다.


Photo by Drew Hay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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