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10 19:48

‘빅 데이터 시대의 사랑: 사랑에 공식이 존재할까? (2) 세상의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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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당신은 데이터 분석이 돌파할 최후의 보루가 사랑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것은 사랑이 감정을 풍부하게 하지만 규명하기 힘들고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은 인간 경험의 극지방이기 때문이다. 수천 년 동안 만족스러운 정의도 못 내린 채 철학자들은 아직도 논쟁을 계속하고 있다. 에리히 프라이드 같은 시인은 사랑의 의미를 기쁨과 고통의 이상한 혼합, 피해 갈 수 없는 버거움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어리석음이니, 주의하라 한다 /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으니, 경험하라 한다 /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사랑이라 말한다”.

내가 Gottman의 연구 내용을 처음 본 것은, 지난해 “사랑의 주인공(Master of Love)”라는 Atlantic 기사에서였다. 그 기사가 입소문을 탔다. 내 친구가 이 기사를 페이스북에 포스팅하며 “사랑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결국 사랑이란, 실험실에서 발견되고 이해되어 우리 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빌딩 블럭으로 분리되어 왔나 보다.

이 기사에서는, Gottman이 “커플이 되기 위한 파트너의 도전(bid)”이라 부르는 것에 올바로 대응함으로써, 사랑의 “파괴자”가 아닌 사랑의 “주인공”이 되기 위한 방법을 제한하고 있다. 여기서 “도전”이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부엌 창을 가리키며 “창밖에 아름다운 새가 있어”라고 말하는 그 순간을 말한다. 그 순간 당신은 “와!”하고 감탄하며 그곳에 시선을 집중(적극적으로 몸을 돌리는 행위)할 수도, “어”라고 중얼거리며 읽던 신문에서 눈을 때지 않을 수도(수동적 반응, 감점 대상), 혹은 “난 새라면 진절머리가 나. 고장 난 차고문이나 살펴봐야겠네.”라고 말을 할 수도 있다. Gottman에 따르면, 사랑의 주인공들은, 그렁 상황에서 87% 정도가 적극적으로 몸을 돌린다고 말한다. 그는 사랑이란 결국 “마음의 습관”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따라서 마음의 습관은 하루아침에 형성되지 않는다. 워크샵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은 손잡이가 달린 박스에 담긴 킷트를 하나씩 받았다. 그 속에는 카드들이 들어 있고, 그 카드에는 파트너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질문들(“만약 엄마가 된다면 그 느낌이 어떨 것 같아?)이나 파트너와 좀 더 분위기 있게 연결되는 방법(“오늘 밤 집에 귀가하자마자, 적어도 6초 이상의 키스로 귀가 인사를 할 것”)이 적혀 있다. 박스에 들어 있는 매뉴얼에는 이해하기 쉽게 설명된 용어들과, 사랑에 빠지면 나타나는 무서운 일들이 적혀 있다. 예를 들면, 싸움은 “유감스러운 사건”이라고 설명되어 있고,  “연결 의식”은 함게 좋은 기분을 느끼게 하는 일이라고 적혀 있다. “견딜 수 없는 취약성”은 유감스러운 사건이 드러날 것 같은 어둡고 내밀한 두 사람 사이의 깊은 골이라 설명되어 있다.

Gottman의 동료 직원인 Kendra Han이 추정한 바에 따르면, 대부분은 “관계가 주는 고통”에 사로잡혀 있는 커플들인 반면, 참석 커플 중 25%는 “즐겁고 풍요로운” 관계를 위해 이러한 일들을 시도하는, 세련되지 않은 자기 인식적 커플들이었다. 희망과 관계의 취약함이 뒤섞인 분위기가 홀 안을 지배하고 있었다. 나는 살짝 미소를 띤 얼굴로 “이미 잘 되지 않고 있다"라고 말하는 한 여성 참가자의 말을 우연히 들었다. “내 남편은 때를 놓치고 말았죠.”

무대에서 2 줄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Gottman 부부를 지켜보며, 나 역시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나도 풀어야 할 사랑 문제를 가지고 여기와 있었기 때문이다.

아랍의 오래된 격언에는, 당신이 사랑에 빠지면, 당신의 연인이 당신의 간을 훔친다는 말이 있다. 중국의 오래된 격언에는 사랑하는 당신의 아이들이 당신의 심장을 앗아갈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인간 문화의 역사에서 로맨틱한 사랑은 종종 어두운 일면을 드러냈다. 즉, 물리적인 벌어짐, 이별의 감각이 로맨틱한 사랑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이별의 감각은 우리가 비합리적으로 행동하게 하여 흠 없던 우리 삶에 구멍을 뚫고 우리를 그 지옥의 공포 속으로 끌어들였다. 전설 속 사랑을 광범위하게 연구한 인류학자 William Jankowiak는 “속임수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라고 내게 말했다.

경혼 사학자 Stephanie Coontz가 저술한 바에 따르면, 속임수의 사례가 많은 것은, 인류 역사의 많은 부분에서, 사람들이 평생 동반자 관계가 “너무 중요해서” 사랑에만 맡길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혼은 일종의 사업적 계약이었다. 많은 부족들이 결혼을 통해 토지를 확보하고 다음 세대를 위한 안정적 유산을 창출해 왔다. 사랑이라는 감정과 이러한 계산적 고려는 언제나 적대적 관계에 있었다.

그 모든  변화는 1700년대 서부에서 시작됐다. 임금 노동직의 증가로 젊은이들이 대가족의 그늘에서 벗어나게 됐으며, 이로 인해 결혼 대상을 스스로 결정하는 자치권이 증가됐다. 계몽주의가 나타나면서 선택의 자유는 대중 사이에 펴져나갔다. 사랑에 빠져 더 할 나위 없이 행복한 여성들에 대비되는 인물을 뜻하는 “독신녀(spinster)”라는 단어도 등장하게 됐다. 

2천 년 동안의 서양 문화에서 사랑에 대한 신념의 발전을 연구한 영국 철학자 Simon May에 따르면, 우리는 기독교 문화가 후퇴하고 상대주의가 부상하면서 사랑을 찾는데 더 많은 중요성을 두었다고 한다. 그는 “인간의 사랑”을 오만한 사랑으로 기술하고 있다: 역사는, 삶을 가치있게 하는 의미와 행복, 그리고 고통과 실망을 극복하는 힘의 원천이 될, 오직 신의 사랑만이 달성할 수 있다 생각된 것을 달성해야 할 의무를 광범위하게 수행해 왔다.” 우리가 민족주의나 공산주의 같은 이념에의 헌신에서 혹은 항상 배려하는 좋은 목자에 대한 우리의 신념에서 찾곤 했던 그 기반을, 지금은 변덕이 심한 인간에게서 찾고 있다. 

나는 사랑이란 “서구의 포고되지 않은 종교가 됐다”는 May의 이론을 읽은 후, 그 증거를 어디에서나 발견하게 됐다. “당신이 사랑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게 되면, 사랑이 인간 삶의 유일하고 거대한 목적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Sue Monk Kidd는 꿀벌의 비밀스러운 삶(The Secret Life of Bees)에서 기술하고 있다. 장례식에서 우리는 고인의 사랑하는 방식을 찬양함으로써 그의 삶이 의미 있는 삶이었다고 간증한다. Sheryl Sandberg가 배우자의 선택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이라고 젊은 여성들에게 조언한 반면,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는 대법원 견해를 피력하며 Anthony Kennedy 판사는, 결혼이란, “표현”에서 “영적 충만”에 이르는, 인간이 갖는 모든 근본적 기쁨의 궁극적이고 마르지 않는 원천이라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May에 따르면, 이전 문화에서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더 이상 사랑을 예외 중 가장 희귀한 것”으로 보지 않고, “그것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 실질적으로 열려 있는 가능성”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기대는 모순된 대안을 제시하고 그중 하나를 선택하는 사람을 비판함으로써 누군가에게 심리적 공격을 가하는 행위(crazy-making)이며, 과학자들이 우리를 구하기 위해 뛰어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1930년대, 사회학자들은 사랑으로 이루어진 결혼 중 어떤 형태가 영원히 지속될 것인지 예측하기 위해 차트를 생성하기 시작했다. 당신의 사랑이 이루어질 지 예측하기 위해 이 차트에 당신의 성격 특성을 입력해도 좋고, 당신의 결혼이 행복과 안정성을 가질 지 예측하기 위해 남자친구의 성격 특성을 입력해도 좋다. 1

1 결혼의 성공 혹은 실패 예측이란 책을 저술한 Emest Burgess가 만든 차트 중 첫 번째 차트는, 범죄자가 감옥에서 나온 후 다시 범죄를 저지를지 여부를 연구한 변수를 차용했다.

Photo by frank mckenna on Unsplash

‘빅 데이터 시대의 사랑: 사랑에 공식이 존재할까? (3)’으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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