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티아고가 부러워 죽겠다! 에세이



*어니스트 헤밍웨이 / 노인과 바다

산티아고여 
당신이 상어를 물리칠 무기, 충분한 양의 물, 혹은 거대한 물고기를 손쉽게 잡아 올릴, 하다못해 도르래나 지렛대라도 배에 준비해 두지 않은 것을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만일 매일 만선은 아니더라도, 당신이 근해든 원해든 자유롭게 목표 지점을 설정해, 계속 물고기를 잡았다면, 당신의 배에는 사용 빈도와 상관없이 필요한 물품이 기본 수량 이상은 갖추어져 있었을 것이다. 2~3일 정도는 견딜 물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80일이 넘도록 고기를 잡지 못했던 당신에게 '오늘'은 단지 85일째 날일 뿐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배를 움직일 기본적인 도구와, 한나절 정도 바다 위에 머물 정도의 물, 비상용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는 칼 한 자루를 들고나가면서도 전혀 염려가 되지 않은 것이다. 
나이가 많았지만, 이틀 간격으로라도 고기를 잡았다면, 당신의 체력과 근력은, 과거 8시간 이상 걸린 팔씨름을 견딘 정도는 아니더라도, 꾸준한 관리로 왼손에 쥐가 내리진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무모했던 점은, 이렇게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물고기가 배를 원해로 끌고 가는 상황에 승부욕을 발동했다는 것이다. 한방으로 지난 손실을 만회해 보겠다는, 실패하는 이들의 습관을 당신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낚시의 묘미는 밀당에 있다. 그리고 마지막 물고기를 잡아 올리는 그 묵직한 손맛에 매력이 있음은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밀당을 하기 전에, 배가 원해로 끌려 나가 육지의 불빛조차 보이지 않는 곳에 이르기 전에 당신은 돌아왔어야 했다. 포인트를 확인하고 다시 준비를 갖추기 위해 돌아서야만 했다. 앞날을 알 수 없는 인간이고 그 포인트에서 다시 묵직한 놈이 걸릴지는 신만이 아는 상황일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하루 종일 상대의 손을 붙잡고 견디며 관객들도 포기한 팔씨름에서 결국에는 승리를 거둔, 과거의 영화가 승부욕의 불씨로 남아 있었나 보다. 낚시꾼에게는 낚싯바늘과 튼튼한 낚싯줄, 그리고 작살과 작은 칼만 있으면 되긴 한다. 어떻게든 물고기를 낚아올릴 최소한의 준비는 된다. 그러나 산티아고여, 당신은 무수히 많은 날들을 낚시를 하며 지냈지만,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지금 투쟁하고 있는 물고기가 5.5 미터인지 550 센티미터인지도 모른다. 순수하게 육체의 능력만으로 낚시를 하고 경험에 따라 물고기가 있음을, 낚시의 순간이 도래했음을 아는 상황에서는 당신만이 아니라 누구라도 손에 전해지는 감각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안정되지 않은 생활에서 만난 큰 행운. 그 누구도 그 유혹에서 헤어 나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도 무모했다.  

더구나, 5.5 미터의 청새치를 끌어올려, 바다라면 당연히 어슬렁거릴 상어에 대비하지도 못할 규모의 어선이지 않았나. 당신이 식량으로 소비해버린 그 물고기 정도를 상정했을 때는 충분한 어선이었지만, 몇 십 년을 바다에서 생활한 어부도 모를, 저 깊은 바닷속 생물들이 소년이 가져다준 미끼를 물 것이라는 것을 상정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렇게 안타까운 마음을 툴툴거리며 털어놓고는 있지만, 청새치와의 승부에서 보여준 당신의 끈기에는 너무도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깊은 존경심과 찬사를 보낸다. 아무리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고, 미지의 일들이 일상처럼 다가오는 바다 위일지라도, 그럼으로 피어나는 수많은 잡념과 불안 속에서도, 혼잣말로 자신을 격려하며 결국엔 5.5 미터의 청새치를 잡아낸 당신은 너무도 위대하다. 결코 배울 수도, 훈련으로 단련할 수도 없는 그 끈기는 너무나 부러웠다. 그리고 청새치를 잡고 나서 당신이 취한 일련의 처리 방식 역시 너무나 능란해 보여, 나는 과연 내가 하는 일을 이렇게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을까라며 당신을 질투하기까지 했다. 10년을 해 온 일인데도, 매일 고생스럽다 느끼고, 해결 방법이 없다 느끼는 나 자신이 너무도 초라했다. 능숙해지는 것은, 은퇴 후 전혀 사용할 일이 없어 노후에 도움도 되지 않는 파워포인트 편집 기술뿐. 10년 동안 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후배들이 성공 지점에 도착하도록 컨설팅할 자신도 피어나지 않는 나에게 당신의 능숙함은 고개 숙임이 당연할 정도였다. 

준비 없이 길을 나선 당신에 대한 나의 안타까움과 연민, 그리고 능숙하게 일을 처리하는 당신에 대한 나의 질투와 반성은 소설을 읽고 나서 몇 시간이 지나도 그 잔향이 짙기만 하다.  
당신은 벌어지는 상황에 맞게, 이틀을 제대로 휴식도 없이 보낸 상황에서도, 생각을 했다. 그리고 해결책을 찾아냈다. 없는 것을 원망치 않고 있는 것으로 최선을 다하는 용기와 결단력에 한 번 더 박수를 보낸다. 마치 엘런 머스크의 과학적 사고를 보는 듯했다. 지금의 나는 이런 상황, 내가 이루려는 목표는 이것, 그러므로 지금 내가 할 일은 이것이라는 체계적인 생각을, 하루를 꼬박 등으로 어깨로 청새치와 싸우면서 나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누구나 어떻게든 해낼 것이란 구전은 여기서는 가치가 없다. 이것은 부러워할 행동이다. 

나이를 잊은 목표 의식과 실행, 막다른 골목에서도 해결 방안을 생각해 내는 사고 능력, 마지막 수많은 상어가 달려들기 전까지 최선을 다한 투쟁, 모두 잃고 뼈만 배에 달고 집에 돌아와서는 현재를 인정하고 깊은 잠에 빠지는 현실감. 이 모든 장점에 책을 덮으며 난 당신을 부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너무도 쉽게 단념하고 너무도 쉽게 목표를 포기하며 너무도 간단히 쉬운 길을 선택한다. 그러는 사이 내가 세운 목표는 사라지고 현실에 치여 작아지고 초라해진 자신만을 끌어안고 있다. 그래서 당신을 부러워하는 모양이다. 이 소설을 이렇게 읽으면 안 된다는 말을 들을 수 있겠지만, 책을 읽고 무엇을 느꼈는지는 나의 제공권 안이다. 난 이렇게 느끼고 이런 내용을 생각했으며 과거를 반성하고 앞으로는 개선된 나로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한 가지 더 부러워한 것은, 당신을 걱정하고 지쳐 있는 당신이 깨지 않게 나가 설탕과 우유가 듬뿍 든 커피를 타오고, 앞으로도 할아버지에게 낚시에 대해, 어부의 삶에 대해 배울 거라 외치는 소년의 존재이다. 80여 일을 빈 배로 돌아온 능력 없던 당신은, 결코 낙오자가 아니었다. 당신의 실패마저 자신이 배울 부분이라 외치는 소년을 나는 추가적으로 부러워한다. 

Photo by Grégoire Hervé-Bazi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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