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사랑했냐면 에세이




얼마나 너를 사랑하는지 자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랑비가 내리면 처음엔 알 수 없다. 빗방울이 가끔 얼굴을 때려도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혹시 건물에서, 아직 남아 있는 전선에서 맺혀 있던 물방울이 떨어진 것은 아닌가 해서. 안개가 가득 낀 듯한 하늘도 쳐다본다. 그러면서도 비가 내린다고는 자각하지 못한다. 그렇게 하며 한참을 걸어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간다. 항상 마시는 커피를 주문하고 빈자리가 없는지 둘러본 후 털썩 자리에 앉는다. 이제야 팔 위의 옷이 눈에 들어온다. 젖었다. 촉촉하다. 스며들지 않고 물방울이 그대로 있다. 여백 없이 촘촘히. 그제서야 창을 쳐다본다. 우산을 쓴 사람들이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비가 오는구나.'

사랑은 이런 것일까? 누군가 나를 아끼고 헌신하고 싶다는 마음을 이렇게 알게 되는 것일까? 가랑비가 내리지 못하는 실내에 들어와서야, 그리고 앉으면서 팔 위의 옷이 시야에 들어와야 알게 되는 것이 사랑일까? 그렇게 무디다. 그렇게 둔하다. 그래서 너는 가끔 나에게 찡그린 표정을 짓나보다. 그래서 너는 가끔 나에게 심통을 부리나 보다. 네가 비추는 사랑의 빛을 느끼지 못하고 항상 딴 곳만 쳐다보는 내가 원망스러웠나 보다. 내가 알아챌 때까지 기다리던 네 마음은 내가 보지 못한 시간만큼 안타까웠나 보다. 자신을 얼마나 닦달 했을까? 더 다가가자고 얼마나 결심했을까? 립스틱 색은 또 얼마나 더 진한 것으로 바꾸었을까? 아직은 괜찮은데도 미용실을 들렸다가 약속 장소로 나갈까 얼마나 갈등했을까? 방에는 얼마나 많은 옷들이 여기저기 놓였었을까? 그래도 나는 너를 쳐다보지 않았다. 네 사랑을 자각하지 못했다.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네 사랑이 약하다거나 흐릿하다거나 자극적이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결코 너의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다만 내가 가진 안테나가 너무 작았나 보다. 센서의 감지 성능이 너무 낮았나 보다. 내 마음 한 켠이 비어 결핍된 채로 오늘도 살고 있나 보다. 지금 나에게 더 화가 나는 일은 난 항상 너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난 항상 너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언제나 항상 너에게 헌신할 마음으로 1분을, 1초를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적어도 나는 너를 만나러 가기 전에 회의에 보고서 작성에 잔뜩 구겨진 양복을 팡팡 털어 편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느라 발에 열이 올라 자리에서는 항상 구두 위에 발을 올려놓고 있다. 그래서 너를 만나러 가기 전에는 손으로 구두 뒷부분의 접힌 부분을 당겨 편다. 화장실에 들어가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매만진다. 그리고 솜씨 없는 손에 살짝 찡그림을 던지고는 너를 만나러 간다. 엘리베이터는 1분 이상 기다리지 않는다. 1분이 넘으면 내가 몇 층에 있든 비상구 계단으로 달려간다. 나와 같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린 사람들이 벌써 1층 출입문을 통과한 것을 보고 아차 싶기는 했지만 그래도 너를 만나기 위해 달려 내려온 내가 대견했다. 항상 택시를 탄다.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지하철역까지 걷기에는 거리가 귀찮을 만큼 멀다. 출발하자마자 달리기부터 시작하는 택시가 서두는 내 마음에 딱 맞다. 결국 지하철로 가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었는데도 이리저리 돌면서도 계속 달리는 택시가 더 빨리 너에게 닿을 수 있다 믿었다. 너를 만나면 가벼워 보이지 않으려고 약속 장소에서 100 미터 떨어진 곳에서 택시를 내린다. 그리고 크게 심호흡을 한다. 지하철을 타고 왔다면 계단을 올라오느라 숨이 차서 그런다지만, 앉아서 온 택시에서 내렸는데도 너를 만난다는 기대감에 지하철 계단을 뛰어 올라온 것보다 더 숨이 찬다. 애써 진정해서 호흡이 돌아오고 발걸음이 평소와 같아진다. 그래도 막상 약속 장소의 문 손잡이에 손이 닿으면 심장은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만난 지 5년. 남들은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질 기간인데 나는 언제나 네 앞에서 긴장을 한다.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면 안심이다. 다시 숨을 고를 수 있으니까. 먼저 와서 기다린다면 네가 원망스럽다. 나는 다시 화장실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손을 씻고 숨을 고르고 옷을 펴고 구두를 살핀다. 머리카락을 정리한다. 그리고 약간 촉촉한 손을 가지고 테이블로 돌아간다.

나는 내가 싫다. 네 앞에서는 사춘기 소년이 되어 버린다. 눈을 마주치지 못해 애써 딴 곳을 본다. 음식을 쳐다보거나 커피를 쳐다본다. 혹은 자리를 전면 유리창 앞 바(bar)로 잡는다. 너를 보면 심장이 너무 뛰어서 술 마신 듯 얼굴이 달아오를 것 같아서. 나이가 들수록 어른의 향기가 나야 하는데, 너는 내 어른의 향기를 없앤다. 그리고 네 향기로 그 자리를 가득 채운다. 더 숨을 쉴 수 없다. 난 그렇게 5년 동안 너를 사랑했다. 하지만 칭찬은 인색했음을 인정한다. 헤어스타일이 변한 것을 알면서도 마음속에만 간직한다. 레스토랑 안에서 너보다 옷을 잘 입은 사람이 없는 대도 그 흥분됨을 마음속에만 간직한다. 그렇게 5년 동안 간직한 모든 너의 변화 기록은 아직도 부족하다. 다 떠올릴 수 없을 만큼 많은데도 아직도 내 마음은 가득 차지 않았다. 아마도 평생 변화를 발견하고 기록해야 가득 찰 것 같다. 이런 나이기에 너는 항상 실망이었나 보다. 내 입이 내 손이 더 가벼워지지 않아 속이 상했나 보다. 생일 카드에 쓴 몇 줄의 축하 글에 감동을 하는 너를 보면 난 표현을 잘 못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100일, 300일, 500일, 그리고 1,000일을 기념하면서 내가 마련한 선물을 너무 마음에 들어 하는 표정에 준비하느라 쏟은 노력은 보답받고도 남았다. 그런데도 넌 가끔 나에게 찡그린 얼굴을 보여준다.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그 찡그린 표정도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니 감정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구차해 보이는 말이지만 진실이다. 그렇지만 더 솔직해지자면 나는 즐기고 있다. 너의 그 찡그린 표정이, 불룩 나온 입이, 눈에 힘이 들어가면서 살짝 돌린 얼굴이 그리고 화가 난 듯 오물거리는 네 입이. 이상하다고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다. 나는 너에게 항상 최고의 나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철저하게도 그 보답을 받고자 했다. 너의 찡그린 귀여운 표정, 불룩 나온 귀여운 입, 그리고 힘이 들어간 눈과 약간 굳은 살짝 돌린 얼굴이, 화가 나 오물거리는 그 입이 나에게는 보답이다. 결코 놓칠 수 없다. 왜 이렇게 가치있게 보는가 하면 그것은 내 반응에만 나오는 나만의 엔터테인먼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헤어졌다. 웃었다가 화가 나서 오물거렸다가 기뻐했다가 눈에 힘이 들어갔다가, 최고라고 칭찬한 후에 불룩 입이 나왔다가 하던 그 생활을, 내 보답을 네가 너무 힘겨워했나 보다. 안타깝게도 나는 너에게 프러포즈를 '당했다'. 결코 선수를 빼앗기기 싫었지만, 난 아직 우리가 살 집을 마련할 만큼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다. 난 아직 결혼 자금을 댈 만큼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다. 난 아직 너와 만들어 갈 새로운 세계에 대해 그려보지 못했다. '곧, 곧' 이러다가 그만 너에게 프러포즈를 당했다. 나는 "잠깐만, 생각할 시간을 줘"라고 말했다. 너는 7년의 시간을 되돌아봤을 것이다. 그날 이후 더 이상 너의 방은 옷으로 어질러지지 않았을 것이다. 더 이상 미용실을 경유할지 갈등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3개월. 나는 언제나 자고 일어난 그대로의 머리로 회의에 들어간다. 고객사를 방문할 때도 결코 구두를 살펴보지 않는다. 임원과 식사를 할 때도 화장실에서 손을 닦지 않는다. 양복을 펴지 않고 구두를 펴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하기 싫었는데. 단지 그것뿐이었는데. 나는 도대체 무슨 사랑을 한 것일까?

5개월이 지나고 그녀와 우연히 마주쳤다. 난 아직도 군중 속에서 그녀를 찾을 수 있다. 친구들과 함께 웃으며 걸어오는 그녀에게 내 그림자는 없어 보였다. 많이 망설였다. 다가갈까 아니면 그냥 지나칠까. 나처럼 그녀도 아직은 군중 속에서 나를 찾아낼 수 있을까? 우리는 결혼을 했고 아이도 낳았다. 나는 항상 그녀의 변화된 모습을 칭찬한다. 당연히 칭찬할만하니까 칭찬한다. 결코 그런 척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한 가지 큰 일인 것은 나는 내 아이가 더 좋다. 아이는 나에게 가끔 얼굴을 찡그린다. 입을 불룩하게 내민다. 눈에 힘이 들어간 상태에서 살짝 얼굴을 돌린다. 그녀 II였고 나는 과거의 나로 돌아간 모양이다. 얼른 수정해야겠다. 여기서 수정해 버리면 내가 받을 보답은 무엇으로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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