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괜찮다”하는 것을 많은 사람이 일상적으로 행하는 곳 뉴욕이라는 그릇



우리가 뉴욕으로 떠난 것은 6월 초. 뉴욕도 여름에 들어가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여름과 뉴욕의 여름이 다른 이유를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삼면이 바다이고 국토의 2/3가 산이다. 우리나라의 여름은 습기가 많다. 그래서 끈적인다. 바람도 덥고 그늘도 더위에서 자유롭지 않다. 햇빛에 데워진 습기가 그늘로 여름을 피한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다. 삼면이 바다 혹은 강인 뉴욕이다. 시 토지 곳곳에 수목이 울창한 공원들이 있다. 뉴욕의 허파 역할을 한다는 센트럴 파크의 면적은 3 제곱 킬로미터라고 한다. 북쪽에 커다란 저수지가 있어서 실제 공원 내 수목의 비율은 센트럴 파크의 50%에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건조한 건가? 건조한 여름이 주는 장점은 그늘의 시원함이다. 햇살에 데워질 습기가 적은 관계로 그늘은 시원한 곳이다. 바람도 땀을 날리기 좋다. 덕분에 레스토랑이나 식당의 테이블에서 브런치나 점심, 혹은 저녁 식사를 하는 것보다, 얼굴과 목덜미, 드러난 팔과 다리에 건조한 햇살을 받으며 먹는 식사는 나에게 각별하다. 햇살이 따갑다 싶으면 그늘로 자리를 옮긴다. 뉴욕은 공원에 들어가면 시원한 벤치가 많다. 공원 앞 계단도 훌륭한 자리다. 시립 도서관 앞 계단도 사용할 만하다. 이러한 행동은 자유로움인가 무질서인가?  

내가 예전 들던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길을 걸으며 먹으면 거지’라는 말이 있다. 일본은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행동을 지양하고, 우리는 체면을 손상시키는 행동을 지양한다. 길에서 음식을 먹는 것은 체면이 상하는 일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괜찮은’ 행동이다. 나의 ‘허용범위’ 안이다. 걸으면서 식사를 할 수는 없다. 앉을 만한 곳에서의 식사는 때때로 괜찮은 방법이다. 이것이 나의 ‘허용 범위’이다. 그러나 자신이 ‘괜찮다’하는 일을 타인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볼 때, 자유를 제한받는다 생각한다. 제한이라 생각하는 이유는 ‘길거리 식사’(가칭)가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행동도, 체면을 깎는 행위도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곱지 않은 시선을 ‘싫은 소리’로 알아듣는다. 종각 앞 테두리 담에 기대어 샌드위치와 콜라를 먹고 있는 나를 누군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나는 아마도 먹던 것을 챙겨 시선이 없을 곳을 찾게 될 것이다. 타인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동이 아니라는 생각이 곱지 않은 시선을 받으면 부자유스러움을 느낀다. 이렇게 느끼는 이유는 아마도 예전에 들었던 말과 지금 보이는 곱지 않은 시선이라는 ‘경험’이 연결되어 지양해야 할 행동이라고 판단하는지도 모른다. 스스로는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지양해야 할 행동이라고도 분류해 놓은 이율배반적 생각이 아닐 수 없다.  

뉴욕은 내가 ‘괜찮다’ 생각한 행동을 많은 사람들이 행한다. 그래서 뉴욕에서 나는 자유로움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나의 첫 해외여행은 일본 도쿄였다. 도쿄에서는 한 번도 길거리 식사를 한 적이 없다. 맥도널드에서 서툰 일본어로 주문을 하려다가, 서비스 걸의 질문 공세에 ‘하이'만 반복했고, 결국 4만 원어치나 구매해 버린 경우에도, 남은 관광을 마치고 호텔에 들어와서 먹었다. 일본 도쿄에서 길거리 식사를 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이렇게 적고 보니 남의 시선을 꽤나 신경 쓰는 소심한 사람으로 내가 그려지고 있다. 이 글의 내용은 나의 소심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안타깝다.  

여기서 응원군을 등장시켜 보자. 유명 연예인, 셀럽들은 데이트나 길거리를 걷는 일을 해외여행에서 한다. 자신을 알아보는 시선이 없는 곳에서 자유로움을 느낀다. 연인과 함께 걷거나 길거리 관광을 하며 손에 음식을 들고 다니며 먹어도 누구 하나 공인이 저런다고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음악과 영화, 드라마가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지금, 셀럽들에게 사진 촬영을 요구하거나 자신의 애정을 표현하는 일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럼없이 맛집에 들어가고 커피 전문점에 들어가며 일반인처럼 행동한다. 곱지 않은 시선이 적은 곳에서 자유로움을 느낀다. 허용 범위 안의 행동을 하는 타인이 많은 장소일수록 내 자유로운 행동에 시선이 꽂히는 일은 적다. 곱지 않은 시선이 자유로움을 제한하는 것이라 판단한다. 비록 뉴욕이 아니더라도, 비록 내가 아니더라도, 허용 범위 안의 행동을 타인과 함께 할 수 있는 곳. 그래서 뉴욕은 내게 이국적인 장소로 느껴졌다.


길거리 식사의 장점은 무엇일까? 왜 나의 허용 범위 내 행동이 됐나? 먼저 식당 혹은 레스토랑을 보자. 케첩을 즐기는 나는 식당 테이블 위에 놓인 조미료가 반갑다. 부족하다 생각되면 더 넣을 수 있다. 길거리 식사는 어떤가? 테이크 아웃 포장 내 케첩을 아껴가며 먹어야 한다. 햄버거, 피자, 감자튀김엔 역시 콜라다. 최근엔 커피로 바뀌었지만 얼마 되지 않았다. 테이크 아웃한 콜라가 모자를 경우, 길거리 식사에서는 식료품점(grocery store)을 찾아 먹던 것을 싸들고 걸어가야 한다. 레스토랑에서는 리필이 있다면 리필을, 추가 주문해야 한다면 생각해 보고 물로 대체하거나 하면 된다. 이런 환경을 두고 굳이 길거리에서 볕을 받으며 식사하는 나는 누구인가? 레스토랑은 ‘매너'라고 하는 규칙이 존재하지만, 나를 편하게 해주는 서비스도 존재한다. 불편하지 않은 규칙과 편한 서비스가 어우러지는 레스토랑을 나는 자주 이용한다. 하지만 규칙도 서비스도 혼자 알아서 하는 길거리 식사는 볕이 따스하고 기분이 좋은 순간을 즐기는 시간이다. 직육면체 안 한정된 모습에는 눈이 가지 않고 음식과 상대방과의 대화 속에서 식사를 하는 것을 즐긴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주변 광경과 나에게 무심한 ‘지나가는 사람’ 1, 2, 3도 내게는 즐길 광경이다. 몸매가 잘 정리된 파리의 그들도, 무너진 몸매로 편안히 지나다니는 뉴욕의 그들도 나에게는 좋은 식사 파트너다. 더구나 식사하면서 주위를 어지르지 않는다면 굳이 뉴욕 시립 도서관의 관계자가 나를 쫓아내지 않는다. 오히려 도서관 앞에 놓인 테이블에서 나는 당당하게 먹는다. 한여름 밤 무료 영화 상영을 하는 뉴욕 시립 도서관 뒤 브라이언 파크는 나에게 자유로운 이국적 장소이다. 파크 매점에서 한 햄버거와 피자가 국내에서 먹은 브랜드 햄버거, 피자보다 입에 맞는다. 옆 돗자리에도 피크닉 준비를 제대로 해왔다. 영화를 보며 샌드위치, 과일 샐러드, 피자, 보온병 속 커피, 얼음 든 콜라가 스스럼없이 입으로 들어간다. 여러 사람들이 비슷한 행동을 하니까 냄새난다고 쫓겨날 걱정도 없다. 자유롭다. 편안하다. 팝콘 말고도 영화를 보며 피자도, 햄버거도, 오다가 사온 다코야키도 먹는다. 선택의 다양성이 있는 곳은 나에게 이국적이다. 그렇게 내 행동에 '무관심'한 그들이 있는 곳이 나에게는 이국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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