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 아버지의 역할에 대한 인식 변화 과정 유익 흥미로운 한글 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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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아버지에 대한 의미 변화 과정.

OLIVIA B. WAXMAN
2018.06.15

매년 6월 세 번째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공휴일, 아버지의 날(Father’s Day)의 존재 목적은 명확하다. 가족들이 아버지와 함께 좋은 시간을 갖는 것이다. 아버지를 위해 선물을 줄 수도 있을 것이고, 가족으로서의 감사를 표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가족들이 아버지에게 감사를 표하는 일은 그 상황이 좀 복잡하다. 미국인들이 아버지에게 기대하는 역할은 아버지의 날 하루 만이 아니라 연중 함께 하는 것이다.

사실, 모든 가족이 그러길 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 가정에 아버지가 존재할 경우, 가족 구성원이 아버지에게 기대하는 바는 가정마다 다르다. 하지만, 아버지 역할에 대해 각 가정이 다른 생각을 한다고 해서, “훌륭한” 아빠가 되는 특별한 방법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멈춘 것은 아니다.

약간의 긴장감도 끊이지 않는다. 예를 들면 예상에 반하는 일들. 외출(going out)과 출근(being a breadwinner), 그리고 집안에 있는 것(staying home)과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spending quality time with the kids) 사이에 존재하는 예상에 반하는 결과들. 이러한 상황은 우리가 소셜 미디어의 영향을 느끼듯 바로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미국에서의 아빠의 역할은 그에 대한 분석만 늘었지 한 사람의 아버지가 되기 위한 올바른 방법이 모든 사람의 동의를 얻진 못했다.

미국에 아빠의 개념 등장

역사가들이 전하는 범위에서, 미국 초창기에 아빠가 된다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큰 고민을 하지는 않았다. 당시 훌륭한 아빠라는 것은 신앙과 지식을 전하는 사람이었고, 그게 전부였다.

Family Men: Middle-Class Fatherhood in Early Industrializing America(가정적인 남자들: 미국 산업화 초기 중산층의 가정적인 남자들)의 저자인 역사가 Shawn Johansen는 TIME에 보낸 이메일에서 “식민지 미국 내에서 아버지 역할(fatherhood)라는 주제는 흔하게 논의된 화두는 아니었다”라고 전했다. “아버지의 역할이란, 아이들에게 신앙심과 교리를 전하는 것과, 동시에 주로 농경 경제에서 성공하는데 필요한 훌륭한 노동 습관과 지식을 머릿속에 심어주는 것이었다.”

그러던 개념이 남북 전쟁이 끝나고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변하기 시작했다. 미국 상업 경제의 성장은, 누군가 - 일반적으로 아버지들이 - 매일 출근을 하는 것을 의미했으며, 가정의 주된 수입원이 농장이나 가족 사업처럼 집 안에서 하는 일이 아니라 집 밖에서 하는 일이 된 것이 더 일반화됐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러한 변화는 중산층 성장이 시작되는 계기가 됐으며, 같은 시기 자녀에 대한 개념이 가정을 돕는 또 하나의 손이라는 존재에서 반드시 보호되어야 할 권리를 가진 개인으로서 보이기 시작했다. 또한 자녀들은 공립학교에 가기 위해 등교를 하기 시작했으며, 자녀들, 특히 아들이 향후 자신의 직업을 찾을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이 아버지의 책임이 됐다. (Johansen은 미국이 아버지의 역할을 인식하기 시작한 이 시기에 일어난, 또 하나의 “놀라운” 변화를 지적했는데, 이 시기에 일부 중산층 아버지들이 자녀가 태어났을 때 자녀의 방에 드나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산업화는 또한 노동자 계급의 아버지에 대한 독특한 기대치 발생으로 이어졌다.

Johansen은 “아버지의 동일성(identity)의 중심이 생계유지와 자녀가 직업을 갖도록 도와주는 능력이 됐다. 하지만, 산업화된 사회에서의 노동이 가져온 예상 밖의 변화는 노동자 계급 아버지의 권위를 심지어 중산층 아버지의 권위보다 더 취약해질 수 있게 만들었다.”

미국 도시에 이민자가 급격히 늘면서, 이 지역 사회에서의 아빠들은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문제에 직면 했다. 그것은 바로 자녀들이 새로이 형성된 지역 사회에 더 잘 동화될 수 있도록 가족을 통제하는 것이 아버지 역할이라는 기대치와 생계 유지 등 고유의 역할 사이에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아버지의 역할

20세기가 시작되면서 생계유지는 훌륭한 미국의 아버지에 관한 사회적 생각의 주된 특징이 된다. 그러나, 아마도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생계유지 외 아버지의 역할에 관한 - 합의(accommodation)가 아니라면 - 인식으로의 환원(swing back)이 곧바로 일어난다.

세기의 전환기에 즈음하여 미국 아이들의 기대치는 빠르게 진화되어 갔고, 아버지 역할도 그에 따라 변화했다. 가구당 자녀의 수가 예전에 비해 줄어들었다. Johansen은 1800년에는 전형적인 백인 여성이 6명의 아이들을 낳았고, 1900년에는 3 명의 자녀를 낳았다고 전했다. 이것은 부모들이 각각의 자녀에게 더 집중할 수 있게 됐음을 의미했다. 심리학이 전문화되면서 아동 발달(아버지의 영향력 포함) 분야가 보다 폭넓게 연구되었다. 심리학자 G. Stanley Hall은 미국인들이 청소년기를 삶의 한 단계로 인식하게 했고 젊은 사람들의 마음을 진지하게 생각하도록 선도했다.

그렇지만 이와 동시에 집 밖에서 일하는데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남성들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연구가 이루어졌다. 도시화 및 교외화(suburbanization), 주 40시간 노동 도입, 그리고 자동차 보급 모두 지속적으로 연구됐다.

Fatherhood in America: A History(미국에서의 아버지의 역할: 하나의 역사)의 저자이자 역사학자인 Robert L. Griswold는 “나는 모던 파더(modern father)라는 용어의 등장을 초래한 핵심 변화가 일어난 시기를 1920년대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자동차의 등장(The advent of the automobile)”이 생계 유지자(여기서는 아버지)에게 “더 많은 빵을 벌어야 한다”라는 압력을 낳았듯, Griswold의 “모던 파더(modern father)”라는 표현은, 가족들이 가정 내에서 아버지의 비 경제적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고 있음을 의미한다.

“새로운 아버지 역할”의 시작으로서 종종 묘사되는 내용 중, 남자들이 기저귀를 갈아야 하고, 지혜의 말을 전해야 하며, 일이 없을 때 아이들과 놀아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문헌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우연이라 볼 수 없지만, 이러한 동향이 일어난 시기는 아버지의 날이 하나의 일(a thing)이 된 시기와 동일하다.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은 결혼한 사람들에게 어려운 시기였는데, 사회는 아버지가 가족을 부양하길 기대했지만, 이 시기에 남성이 주도한 산업 사회의 일자리가 여성이 주도한 서비스업보다 더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아버지들은 가족을 부양하기가 특히 어려웠다. 일부 아버지 지지자들은 실직 상태에 있거나 능력 이하의 일을 하는 남자들의 자존감을 높일 국경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강요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날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아버지의 날을 매년 6월 세 번째 일요일로 서명한 1972년에야 비로소 법으로 정해졌다.)

그렇기는 하지만, 아버지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이 아빠들이 자녀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쉬워졌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았다. Griswold의 표현에 따르면, 2차 세계 대전 중, 아버지들은 “대공황으로 일자리를 잃는 것에서 전쟁으로 일자리를 잃는” 상태가 됐다. 징집이 미국 가정에 어떤 영향력을 가지게 될지에 대한 전문가들의 우려 때문에 1943년 말까지 아버지들은 징집되지 않았다. 이로써 가족을 이루는 것이 징집을 피하는 방법이 됐기 때문에 이 시기 징집은 결혼이 급증된 이유가 됐다. 미국 상원 의원 Burton K. Wheeler (D-MT)는 “미국 가정이 붕괴되기” 전에 “정부 기관(government bureaus)” 내 “게으름뱅이(slackers)”를 전장으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던 파더 The Modern Father

다음에 소개할 변화는 최근 지속되고 있는 변화이다. 여성 해방 운동(he women’s liberation movement)이 등장한 1960년대 말 이후, 여성 직업의 범위가 더 넓어지고 교육 기회가 더 많아지면서, 가정 생계 유지자의 이미지가 변화했다. 무과실 이혼(no-fault divorces)의 증가 역시 양쪽 가정에서 번갈아 지내는 자녀의 수를 증가시켰다. 가족을 부양하는 여성과 엄마-아빠-아이 모델을 따르지 않는 가정은 과거에도 존재했지만, 20세기 말에 이르러 미국 사회는 새로운 방식으로 그러한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떤 유형의 가정을 가진 미국인이든 “훌륭한” 부모가 되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에 아버지의 역할은 노력의 중심에서 노력의 일부로 변화했다. 

시대의 정신을 따라가면서, “새로운 아버지 역할” 운동은 제 모습을 찾았고, 아버지 역할에 대한 새로워진 관심은 현재 진화 과정을 거치고 있으며,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play) 것이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관한 대중 인식이 증가하던 1993년, 그 해 아버지의 날에 출간된, 아버지 역할에 대한 커버스토리에서 TIME은 “미국 역사에 기록된 것보다 더 많은 아이들이 오늘 밤 아버지가 없는 가정에서 잠이 들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범죄, 약물 남용, 우울증, 학업 실패에 관해 전문가들과 대화해 보면, 그들은 그러한 문제가 미국 가정에서 아버지가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몇 가지 연구를 들고 나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 지내는 아버지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대화는 더 복잡해진다. 상사, 기관, 주변 문화, 심지어 아내에게 들은 내용은 대단히 파괴적인 메시지에 이른다. 즉, 우리는 정말 남성들이 부모가 될 것이라 믿지 않으며, 우리는 정말 남성들이 부모가 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특히, 소셜 미디어가 훌륭한 부모 되기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는 기반으로 성장한 지금, 아버지들이 자신이 필요 없다는 메시지를 받고 있다는 생각은 여전히 하나의 문제가 되고 있다. 예를 들면, The Journal of Child and Family Studies 저널에 최근 실린 한 연구는, 어머니들이 여전히 육아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다는 “폐쇄적 모성애(maternal gate0closing)”같은 생각은 아버지들을 어쩔 줄 모르게 만들 수 있으며 부모가 되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아직 사회가 “훌륭한” 미국 아빠에 관한 완벽한 이미지에 도달하지 못했으므로, 진화는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진화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그 과정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 관련 연구를 한 Lauren Altenburger가 TIME에 말한 바에 따르면, 균형을 잡으려는 이 오래된 행위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부모의 역할 수행에 대해 개방적으로 소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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