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아님] 국가는 어떻게 살아가나 에세이




이정명의 소설 '뿌리 깊은 나무'는 드라마로 제작 되었다. 그 드라마에서 세종 대왕과 정기준의 '글자'에 대한 논쟁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원작 소설에서 창작된, 세종대왕 '이 도'가 썼다는 '고군통서' 중의 내용이다. 국가는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감명 깊은 글귀다. 그래서 공유한다.

"
예로부터 이 나라는 고유의 말과 풍속을 지녔으니 중국의 속국이 아니고 제후국은 더더욱 아니다. 그래서 고려 또한 왕이 아니라 황제라 칭하였던 것이다. 그런데도 새로 군왕이 등극한다 하여 중국에 사은사를 보냄은 어인 까닭인가? 스스로 나라를 칭하는 이 땅에서 군왕을 세우는데 어찌 명나라 황제의 허락이 필요한가? 군왕이란 그 나라의 하늘과 땅과 백성이 내는 것인데어찌 대국이라 하여 그 천명을 좌지우지 할 것인가? 나라가 군왕과 신하와 백성의 힘으로 바로 서야 하거늘 어찌 대국의 힘에 기대어 서려 한다는 말인가? 그렇게 선 군왕이 어찌 백성을 안위케 할 것이며 나라의 융성을 도모할것인가? 중국이란 나라가 대국이라 하나 이 나라를 세우는 데 털끝 하나 관여한 바 없다. 해마다 수확철이면 공물과 공녀를 요구할 뿐이다. 그런데도 사은사를 보내야 함은 다만 대국이라는 위세 하나로 이웃나라를 윽박지르는 무도한 처사가 아닌가? 이를 어찌 대국이라 할 것이며 좋은 이웃이라 할 것인가?

그런데도 오래전의 부끄러운 관습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대대로 뿌리 깊은 사대와 모화의 헛된 관습 때문이다. 대국의 위세에 기대어 영달을 구하는자, 대국의 경학으로 입신하려는 자, 어떻게든 중국 조정 관리의 막종으로라도 연줄을 대어 부귀를 얻으려는 자, 중국의 물건을 팔아 부를 축적하려는 자들이 한둘인가?

가련한 백성들은 애써 지은 수확을 공물로 바치고 금쪽같은 딸자식을 공녀로 바치며 피가 끓었다. 이렇게 제 백성의 피를 빨고 뼈를 깎아 부귀영달을 꾀하는 자를 어찌 사대부라 할 수 있으랴? 이는 모두가 이 나라의 힘없음 때문이요 이 백백성의 깨달음 없음 때문이다. 우리의 군력이 대국을 능히 대적하고 우리의 궁리가 대국을 앞지르며 우리의 격물이 대국을 넘어서면 더 이상 대국은 대국이 아니요 조선은 변방의 조공국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 왕이여 명심하소서. 어설픈 흉내로 작은 중국이 되려 하지 말고 이 나라의 격물로 치지하시와 이 나라가 온전한 나라로 곧추서게 하소서….

"

덧글

댓글 입력 영역

최근 포토로그


통계 위젯 (화이트)

05
54
54675

Google Ad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