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아님] 우리 터치하자 에세이




현대사회는 터치 touch 필요로 한다.​​


최근 MBTI 유행하고 있다. MBTI 자신을 이해하는 도구이다. 도구가 주목을 받을까? 이는 '오늘의 운세' 연말 연초의 토정비결을 보는 것과 유사하다. 이를 삶을 운에 의지하려는 현대인의 심리라고 해석하기 보다, 이런저런 방법을 해도 삶이 나아지지 않아 답답한 사람들이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기 위해 손을 벌린 것이라 해석하면 어떨까? 도구를 통해 자신을 이해하면 나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을까? 오늘 사업운이 좋다니 조금 힘을 내면 삶이 나아지지 않을까?​​


백종원의 '만남의 광장' 터치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못생긴 감자, 재고로 남은 다시마. 그는 사업가와 이야기를 하고 소비되지 못한 산물이 쓰임 있게 했다. 이를 개인의 인맥이라든가 영향력으로 해석하는 것보다, 현대 사회는 터치를 필요로 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사람들은 획기적이고 벼락 맞은 듯한 성공을 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전보다 나아졌음을 느끼고 싶은 것일 것이다. 노력이 드디어 반응을 만났음을 체감하고 싶을 것일 것이다.​​


선거뿐만 아니라 우수한 재능으로 성과를 거둔 이들을 지도자라고 부르고 따르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혼자서, 혹은 여럿이 손을 잡고 일을 시작했는데 시작할 때보다 나아지기는커녕 사방에서 장애물을 만난다. 자신의 분야에서 성과를 사람들의 지도를 받으면 우리도 나아지지 않을까? 우수한 사람이 앞장 서면 우리가 보지 못한 길이 보이지 않을까?​​


자유 민주주의는 구성원의 자유를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사회다. 자유는 내가 무엇을 자유가 있음을 말한다.​​


이를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선택의 자유에는 선택의 책임이 따른다. 선택을 해내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이 필요하다. 누구도 그것에 관여하지 않는다. 뜻이 맞는 사람끼리 모여 일을 시작할 자유도 있을 것이다. 관련 자에게 도움을 요청할 자유도 있다. 이렇게 협력을 통해 개인의 한계를 극복할 자유도 있을 것이다.​​


아이디어의 한계를 협력으로 극복하려 때마저 장애물을 만난다. 상황을 개선하려는 무수한 아이디어가 실패 혹은 현상 유지로 마무리된다. 이럴 누군가의 터치가 있다면 일은 터닝 포인트를 만나게 된다.​​


봉건 정치, 신분제를 벗어나도 우리의 삶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기회를 잡을 자유는 생겼지만, 시장은 녹녹하지 않다. 신에게 의지해 보지만, 신은 자신이 필요로 나타나지 인간의 바람으로 손을 대지 않는다.​​


병에 걸렸다. 이름난 병원을 찾아가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름난 병원이란 많은 문제를 해결할 있는 기관이자, 내가 떠올릴 있는 마지막 보루다. 그곳에 해결책이 없을 막막해진다. 이럴 질병에 권위 있는 의사를 누군가 알려준다면 우리는 새로운 기회를 잡을 있을 것이다. ​​


너도 자유, 나도 자유.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다. 이것은 신분제로 고정되어 기회조차 잡을 없는 상황만큼 극복하기 쉽지 않은 장벽이 된다. 장영실이 자신의 재능을 살려 성과를 이룩하는데 신분제를 넘는 발탁이 훌륭한 터치가 됐다. 왜구에 시달려 어려움을 겪는 백성에게 해결책이 없지만, 대마도를 정벌함으로써, 영원한 해결책은 아니었지만 살아갈 틈이 만들어졌다.​​


이런 터치는 초능력의 히어로 만이 있는 일은 아니다. 한계에 허우적대는 나도 있다. 비록 나의 선택이란, 투표에서의 ' 해당되는 작은 영향력이라 할지라도 이는 좋은 시작이다. Follower 10 자리에 있더라도 자신의 터치를 알린다면 이는 터치의 전파가 시작된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있는 타당한 일에는 움직일 마음이 생긴다.​​


그러니, 터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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