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ix Home: Screen "Soul" 에세이



Photo by Kyle Glenn on Unsplash

애니메이션 ‘소울 Soul’에서 관객에게 던진 질문은 무엇인가?


ㅇ 이대로 살아가는 것이 나다운 삶인가?

ㅇ 내가 세상에서 할 중요한 일이 더 있지 않을까?

ㅇ 인생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고 우리가 그것을 통제할 수 없지만 눈앞에 닥친 일을 가치 있고 (가능하다면) 아름다운 것으로 바꾸는 일은 우리가 행동하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ㅇ 무언가를 하거나 되지 않아도 좋을, 지금 있는 그대로의 삶. 물론 더 나은 무언가가 아닌 현재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그래도 괜찮다’는 마음을 먹기까진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하다. 디즈니-픽사의 신작 ‘소울’은 ‘태어나기 전 세상’을 체험한 한 재즈 뮤지션의 일화를 통해 진짜 나의 모습을 제대로 바라보도록 이끈다.


잡지 cine21.com의 기사를 요약한 항목들이다. 이쯤 읽고 나니 과연 철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애니메이션 ‘소울’은 철학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관련 자료를 조사하면서 흥미가 끌인 내용은 철학의 ‘철(哲)’자이다. 형성문자인 ‘철’에 대한 어원을 네이버 사전에서 찾아 봤다.


哲자는 ‘밝다’나 ‘슬기롭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哲자는 折(꺾을 절)자와 口(입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折자는 도끼로 나무를 동강 낸 모습을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절→철’로의 발음역할만을 하고 있다. 哲자는 ‘현명하다’나 ‘사리에 밝다’라는 뜻을 위해 만든 글자이다. 그래서 금문에서는 口자가 아닌 心(마음 심)자가 그려져 있었다. 고대인들은 감정이나 생각은 머리가 아닌 심장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문에서는 心자가 ‘사리에 밝다’라는 뜻을 표현했었지만, 후에 口자로 바뀌면서 본래의 의미를 유추하기 어렵게 되었다.


애니메이션 ‘소울’은 지금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작품, 즉 ‘지금의 나’를 분해하고 쪼개어 밝게 들여다보게 하는 작품이다. 전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지금까지 많은 작품들에서 동일한 주제를 서사했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태어나기 전에 자신의 개성을 형성하는 ‘태어나기 전 세계’가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주인공은 ‘태어나기 전 세계’에서 생성되는 지구 통행권에 대해 극의 말미까지 오해를 한다. 통행권의 최종 아이콘 ‘스파크’는 ‘자신이 삶에서 할 일이 정해져야 형성되는 것은 아닌가?’라는 오해 말이다. 하지만 태어날 소울의 인도를 맡은 제리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목표를 세우고 목적의식을 불태우라고 누누이 들어온 사람은 갸웃하게 된다.

걷기 Photo by Sébastien Goldberg on Unsplash

여기서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cine21.com 관련 기사를 보면, 디즈니가 헤피 엔딩과 성장이라는 목적 지향적 스토리텔링을, 픽사가 관찰과 공감의 스토리텔링을 한다고 한다. 이 문장과 애니메이션 ‘소울’을 연결해 보자.

목적 지향의 삶, 이것은 미덕이고 진정 삶을 살아가는 올바른 방향성의 대표라고 이야기되어 온 삶의 형태이다. ‘하면 된다’라든가 ‘노력 끝에 성공이 온다’는 말은 대표적인 유도 문구이다. 그리고 빈번히 ‘엄마 친구 아들(혹은 딸)’이 등장해 속을 훌떡 뒤집어 놓는다.

주인공은 바라던 재즈 뮤지션의 길을 걸을 기회를 잡는다. 하지만 극 말미에서 주인공은 ‘내일도 공연’이라는 말에 ‘어, 이건 아닌데’라 생각한다. 주인공은 극 전반을 걸어오면서 무엇을 느낀 것일까? 자신의 몸에 들어간 ‘22’의 경험까지 한데 어우러진 판단의 결과가 ‘어, 아닌데’였다. 뭐가 아닌가? 이제 날마다 공연을 하고 인정을 받을 출발점에 섰는데. 바라던 목표에 이를 문이 열리지 않았나? 

귀염둥이 ‘22’ 역시 이상하다. 워렌 버핏과의 점심식사. 2018년 6월 3일자 동아일보의 기사를 통해, 워렌 버핏과의 점심식사 경매가 330만 100 달러, 우리 돈 35억 5천만 원에 낙찰됐다는 내용을 읽었다. 그리고 우리는 고전 읽기가 우리의 삶을 더 나은 삶으로 바꾸는데 필요한 금과옥조(金科玉條)를 얻는 일이라 들었다.

그런데 ‘22’는 그런 고전을 쓴 이들과의 대화에서 ‘지구 생활은 재미없는 일’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왜 그럴까? 그들은 35억 이상의 돈을 주고도 만날 수 없는 금과옥조의 생산자들인데. 그런 ‘22’가 하늘거리며 떨어지는 잎사귀에, 주인공의 몸을 쓰고 지낸 몇 시간의 경험에 ‘지구의 삶이 살만한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리고 ‘유 세미나’에 가지 않겠다며 도망을 친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미리 필자의 생각을 말하자면, 1) ‘22’는 그들이 금과옥조 생산자라는 것을 모르고 만났다 2) 모르고 만난 상태에서 듣는 그들의 심득은 ‘지루하고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그리고 ‘왜 이것을 알아야 하는지 모르겠는’ 말들이다. 마치 ‘수학을 왜 배워야 하지?’라는 질문에 공부의 손이 멈춘 아이처럼. 어쩌면 금과옥조라는 고전은 고민에 고민을 거쳐 얻은 심득이니 만큼 듣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또 심득을 소위 ‘진지한 철학자의 표현’으로 전하니 재미가 없을 수밖에.

cine21.com의 기사에서도 언급됐고, 필자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목적 지향의 삶이 잘못된 삶의 방향은 아니다. 목적을 이루었을 때의 충만과 기쁨으로 흐뭇한 행복은 진정 달콤하고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러니 삶의 목표를 향해 오늘도 성실하고 충심어린 마음으로 임하는 이들의 삶이 잘못된 삶은 아니다.

필자는 애니메이션 ‘소울’을 보고 이틀 가까이 ‘이 애니메이션이 던지는 화두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사로잡혀 있었다.

목표지향적 Photo by Tyler Nix on Unsplash

그 답을 관찰과 공감에서 찾아보려 한다.

목적 지향적 삶은 매진할수록 모든 감각이 목표에 집중된다. 필자는 ‘목표를 이루려면 냉혈한 태도가 필요하다’라고 믿고 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 목표와 무관한 모든 일들과 접촉을 끊고 맹진하는 것이 가장 빠르게 가장 신뢰성 있게 목표를 이루는 길이라 믿고 있다.

애니메이션 ‘소울’을 보고 나서 이 생각에 첨가할 생각이 나타났다.

목표를 이룬 것이 내 삶의 전부가 아니라, 나와 목표라는 1:1 관계의 완결은 아닐까? 목표 지향의 삶은 내 삶의 일부이지 전부는 아니지 않을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목표 달성이 내 삶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우리는 중요한 일을 간과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은 cine21.com을 읽고 나서 그 형태가 명확해졌다. 그런 다음 필자가 기사에서 주목한 단어가 ‘관찰과 공감’이다.

목표라는 한 점에 집중하는 만큼, 주위와의 공감은 이행하기 어려운 일이다. 목표와 무관하다고 옆으로 밀어놓은 것이 오감을 열고 주위를 살피는 일이다.

어떤 목표든 이루어야 할 이유를 가지고 있다. 


‘나의 목표는 돈을 버는 것이다. 내가 경제적으로 부유해질수록 우리 가족은 더욱 윤택한 삶을 살 수 있다. 의식주에 대한 고민을 놓고 하고자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 인생의 재미, 맛있는 것, 멋있는 것, 부담 없이 어울리는 것이 가능하다. 돈은 만능이 아니지만 나와 가족을 충족할 수 있다.’


그래서 수입을 늘리고 저축을 늘리고 본업 외에도 돈을 불릴 다양한 일을 한다. 밤을 낮 삼아, 휴일을 평일 삼아. 보통 드라마는 이럴 때 ‘잃어버리는 것’에 주목한다. 아버지와 대화를 하고 싶지만 언제나 바빠 얼굴 볼 새도 없는 아이들. 결국 아버지는 우리보다 돈이 더 중요해 라며 돌아서는 아이들, 혹은 가족들을 보여준다. 드라마 시청자인 필자는 ‘가족을 윤택하게 살게 하고자 돈을 번다고 하면서 가족을 등한시 하는 태도는 좋지 않다’라는 결론에 이른다. 

드라마와 ‘소울’의 차이는, 나를 죄인으로 만드느냐, 아니면 다시 생각할 실마리를 주느냐의 차이 같다. 사실 이르러야 할 곳에 닿지 못한 결과는 필자 소견이 얕아서 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필자는 입바른 소리를 한다. 목적 지향적 삶, 목표 한 점에 모든 정신을 집중하는 삶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오감을 열고 시야를 넓혀 나에게 중요한 일, 내가 도움을 받아 감사할 대상, 진정한 삶의 목표, 삶의 목표가 가진 본질이 무엇인지 잠시 멈추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소울’이나 필자가 ‘목표 지향’을 포기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냉혈 해야 하는데, 가족들을 일일이 다 상대하며 언제 목표를 이룰 것인가?’라는 이견이 마음속에 떠오른다. 또 마음은 나에게 묻는다. ‘가족을 위한다면서 가족을 등한시 하는 것이 과연 맞는 방법인가? 돈을 버는 궁극의 목적은 가족에 있지 않나?’ 아마도 이런 현상은 모두 겪는 일일 것이다. 

폴 맥린의 ‘삼위일체뇌’에 따르면 인간의 뇌를 3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R복합체는 일명 “파충류의 뇌”라고 하며 뇌간과 소뇌를 포함하고 기본적인 생존의 행동과 생각이 나온다. 변연계는 감정과 본능의 원천으로 이 부분이 자극되면 특정 생각과 감정이 발생한다고 한다. 신피질(대뇌피질)은 이성적 사고, 언어, 고차원의 사고능력이 발휘되는 부분이다. 마음의 소리는 변연계가 자극을 받아 나온 ‘나의 생각’이지 않을까? 다시 말해서 신의 목소리나 양심의 소리 혹은 진리의 소리는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오히려 신피질을 가동해 주위 상황을 이성적으로 고차원적으로(?) 관찰하고 공감하며 사고하는 것이 올바른 길을 찾는 방법이 아닐까?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 100인이 있다면 각자에게 맞는 삶은 100가지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정말 자신이 갈 길이라면 장애물이 나타나도 그 크기가 작고 막아서는 사람도 적어 막힘없이 흐르는 물처럼 흘러갈 것이라는 점. 또 하나는 타인과 나를 비교할수록 상대적 빈곤감에 빠져 올바르지 않은 결정을 내릴 때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이것이 ‘내가 올바른 길을 걷고 있나?’에 대한 필자의 나침반이다.

넓은 시야 Photo by Vanja Matijevic on Unsplash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자.

돈을 버는 것은 수단이다.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내가 추구한 삶은 “돈을 벌어 가족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다. 돈을 버는 것은 가족을 윤택하기 위한 수단이고, 내가 삶에서 추구하는 꿈은 가족의 윤택과 행복이다. 그러므로 지금 하는 내 행동과 판단, 혹은 선택이 돈을 버는 일인가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윤택하고 행복하게 할 수 있나‘에 맞춘다.

이렇듯 ‘과연 지금 가는 길이 올바른 길인가?’를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해 보라는 것이 애니메이션 ‘소울’이 던지는 메시지는 아닐까? 맹진하던 발을 멈추고 관찰을 하고 공감을 하는 과정이 올바른 길로 방향을 맞추기 위해 필요한 방법은 아닐까? 


ㅇ 과연 혼자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일까? 가족이 함께 윤택한 삶의 모습을 생각해 보고 서로의 역할을 나누어 ‘가족’의 힘을 발휘할 기회를 갖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 아닐까?

ㅇ 물가는 계속 오르고 지금의 화폐 가치는 떨어져, ‘재무적인 윤택’의 수준은 시간이 갈수록 높아만 질 텐데, 혼자 그 돈을 버는 일을 감당할 수 있겠나?

ㅇ ‘혼자가 아니라 뜻이 맞는 이들과 조직을 구성해 함께 노력하고 있어!’라고 답한다면, 함께 노력할 구성원에 가족의 자리는 없는 것인가? 

ㅇ 가족이 윤택하게 사는데 100억이 필요한가 1,000억이 필요한가? 오히려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고 없으면 안 되는 것을 구매할 때만 돈을 쓴다면 어떤가? 가족이 윤택하게 생활하는데 필요한 돈은, 반드시 필요한 것을 구입하고 유사시를 위해 저축할 돈이 있으며, 이를 위해 수입이 끊어지지 않는 일을 찾는 지점이 진정한 목표지점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ㅇ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엉망인 식사를 하고 건강을 해쳐 결국 모아놓은 돈을 병원비로 없애 결과적으로 ‘혼자 벌고 혼자 쓰게 된다’면 나는 제대로 길을 걸어온 것일까?


목표를 제대로 알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오감을 활짝 열어야 할지도 모른다. 수시로 올바른 길을 걷고 있는지 확인하고 조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오감을 활짝 여는 행위가 주의가 산만한 것이 아니라 제대로 길을 찾아가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행동은 아닐까? 앞에서 언급한 질문 ‘내가 세상에서 꼭 해야 하는 일이 더 있지 않을까?’에 대한 답변은 이런 것이 아닐까?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저자 스티븐 코비 박사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필자의 역할은 ‘아버지’, ‘남편’, ‘아들’, ‘작가’, ‘매체운영자’(중요도와 무관하게 정리)일 것이다. 이렇게 주어진 삶에서 자신의 역할을 돌아보고, 정말 중요한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내 역할을 보다 잘 수행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전술한 문장 ‘인생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고 우리가 통제할 수 없지만 눈앞에 닥친 일을 가치 있고 (가능하다면) 아름다운 것으로 바꾸는 일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의 답이 되는 행동이 아닐까?

꽃잎 Photo by Masaaki Komori on Unsplash

이야기를 여기쯤 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과연 인간은 사명을 부여받고 태어난 것일까?’ ‘내 의지와 무관하게 생을 받는다‘라는 눈앞에 닥친 일을 가치 있고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고, 충분히 만족하고 이에 기뻐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살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우리 의지로 아이를 낳았으니 그 아이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주는 것이 자애이지 않을까? 부모의 의지로 시작된 삶이지만 그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도록 내게 노력을 아끼지 않는 부모에게 감사를 하는 것이 효이지 않을까? 자애와 효 간의 소통으로 우리는 지금까지 겪었던 갈등과 충돌 중 큰 부분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가족의 일은 모르고 이야기할 수 없는 민감한 부분이긴 하지만.

애니메이션 소울은 이미 생을 30~40년 이상 살아온 이들뿐만 아니라, 10~20년 산 이들에게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생각하게 할 실마리를 지닌 작품이지 싶다.

*제목이 'Home'이라 오해를 할 분들이 있을 것 같아 언급합니다. 이 이야기는 극장에서 본 후 작성한 것입니다. 마스크 두 개 착용하고...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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