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가도 될까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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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속에 혼자 앉아 있다. 버스, 지하철, 거리. 요즘은 거리에 사람이 적어졌으니 이젠 제외할까? 어찌 되었든, 주위에 사람이 많은데도 홀로 있는 것을 군중 속의 고독이라고 하지 않는다. 학교 친구, 직장 동료, 알바 동료, 친한 친구, 동호회 회원들. 즉 안면이 있고 대화를 나누었던 사람들 사이에 있는데 홀로 있는 것 같다. 혹은 홀로 있다. 다시 말해서,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고, 나 역시 말을 걸지 않는다. 이를 군중 속의 고독이라고 하지 않는다.


시간을 초월해야 하는 위대한 소명은 언제나 외로움이 따를 수밖에 없고, 부자, 학자, 열광을 받는 자들이 느끼는 외로움과는 정반대로, 다른 사람이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바로 외로움의 본질이오. 오직 그에게만 주어진 초인적인 문제를 온전히 스스로,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이해받지 못한 채 해결해야 하는 운명을 선고하는 위대한 외로움에 대한 낭만적인 비유, 천재적인 사회 부적응자, 이것이 하이데거의 자기 이해다. 이른다 ‘군중 속의 고독’

*출처: https://blog.daum.net/spinoza1677/2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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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에게 2시간의 공백이 주어졌다. 그리고 그 2시간을 해결하고자 하는, 해결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이러한 필요.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존재가 사람이다. 익숙하고 알고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을 몰랐다. 그럼 그 동안 내 앞에서 이야기한 말들은 무엇인가? 그가 보인 행동은 또 무엇인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을 상대함에 재미를 느낀다. 이런 사람들이 주위에 모이면 테두리 없는 모임이 되고, 그 중 빈번하게 교류하게 되는 사람은 친구가 된다. 하지만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그것이 시작부터인지 ‘알고 있던’ 중간인지 와는 무관하게, 이런 생각이 들면 두려움에 싸인다. 그의 감당 되지 않는 행동, 이해할 수 없는 말(즉, 생각)은 두려움으로 마음에 남는다. 멀어진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주어진 2시간의 시간에 대해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고, 이런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없다. 내 주위에 자주 서는 사람들도 “왜?”라는 시선을 보낸다. 혹은 보낼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 다음 단계는 고독의 존으로 홀로 들어가는 것이다.


어제까지 아니 방금 전까지 물고 빨던 사람이 더 이상 물고 빨지 않겠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을 물고 빨지 말라고 한다. 이별이다. 대하드라마처럼 쏟아져 나오는 상대의 이유, 그리고 그 기반을 받치고 있는 ‘이럴 수밖에 없음’. 억울한 마음은 상처가 된다. 노력하겠다는 선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상처가 된다. 이별 자체가 상처가 된다. 혹은 대하드라마를 설파한 사람이 나일 수 있다. ‘이럴 수밖에 없음’을 마음에 가진 이가 나일 수 있다. 그런 나도 상처를 입는다. 그 다음 단계는 안식처로 홀로 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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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등교하는 아이를 위해 아침을 준비하고 밤새도록 켜둔 초음파 가습기를 닦고 다시 물을 채워 스위치를 올린 후 집안 청소를 한다. 

점심을 준비하고 다 돌아간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 빨래 줄에 건다. 택배를 받고 저녁 준비를 하려고 냉장고를 연다. ‘아, 뭔가 부족해.’ 

근처 식료품점에 장을 보러 갔다가 저녁 준비를 한다. 

아침에도 설거지, 점심에도 설거지, 저녁에도 설거지. 하루 3식의 행사를 마치고 물걸레로 방과 거실의 바닥을 닦는다. 가습기 수조를 비우고 간단히 헹군 후 다시 물을 채우고 스위치를 넣는다. 


너무 조용한 거 아닌가? 편의점에서 가장 싼 무선 에어팟을 구입한다. 두 쪽을 다 끼우면 외부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번갈아 가며 한쪽씩 착용한다. 틈틈이 모아둔 재생 목록을 틀거나, 신곡 전체 재생을 클릭한다. 혹은 Top100을 전체 랜덤 재생하거나 음원 스트리밍 자키들의 추천 곡을 재생한다.


그러다가 매일 듣는 꽃노래가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예능을 튼다. 다큐멘터리를 튼다. 영화 VOD를 튼다. 드라마 VOD를 튼다. 이럴 때 예능, 다큐멘터리, 영화, 드라마는 모두 우리말이거나 더빙이어야 제대로 화이트 노이즈 역할을 한다. 외국어일 경우 자꾸 일상으로 향하는 집중력에 방해를 받는다.


컨텐츠는 보는 대상으로서, 그리고 이제 화이트 노이즈로서 존재한다. VHS, 카세트테이프, LP로 시작된, ‘틀로 싶을 때 틀 수 있는 컨텐츠’는 IPTV를 지나 스트리밍에 도착했다. 컨텐츠 보유 공간이 점점 줄어드는 대신 접근 가능한 컨텐츠 수는 급속히 늘었다. 다시 보거나 신작을 보거나 한다. 스트리밍의 등장, 매주 업데이트 되는 컨텐츠. 그리고 도달한 곳은 ‘이젠 뭘 보지?’


지금까지 컨텐츠는 ‘원하는’ 대로 접했다. 나의 기호와 개성, 선호와 관심이 선택의 기준이었다. 구입이라는 중간 과정을 통과하는 만큼 웬만큼 좋아하지 않는 이상 구입하지 않는다. 아니면 친구에게 빌려서 시.청.했다.

VHS 시대가 되니 ‘대여’가 생활 속으로 들어왔다. 접촉 비용이 낮아지니 대여점이 보유한 모든 VHS가 볼 컨텐츠다. 극장 상영작 중 보고 싶었던 것, 이미 봤지만 다시 보고 싶은 것을 선택한다. 거기에 추천작이 포함된다. 매체를 통해 ‘전문가’가 다양한 기준으로 추천한다. 그러다가 ‘이젠 뭘 보지?’에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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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TV 시대, 그리고 이어진 스트리밍 시대가 되니 내 손에 닿는 컨텐츠의 수는 억 단위에 이른다. 종류도 다양하다. 방송,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예능, 국내음악, 해외음악, 뮤직 비디오, 공유 플랫폼의 동영상. 풍요 속의 빈곤이라 할까? 너무 많은데 선뜻 선택이 안 되는 순간을 빈곤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젠 월보지?’의 질문은 ‘이젠 어떡하지?’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다. 적어도 괜찮은 키워드 몇 개는 기억해 두어야 컨텐츠 홍수에 빠져 침몰하지 않는다.


초등학교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듣는 단어는 ‘순위’다. 왜 그렇게 순위를 따지는 것일까? 이는 관음증의 일종일 것이다. 

‘쟤가 얼마나 하는지?’ 보고 싶은 마음. ‘어? 내가 뒤쳐진다고?’라며, 이런 일이 없어도 살기 쉽지 않은 생에 ‘경쟁’이라는 처리하기 힘든 일과를 굳이 가지고 온다. 더불어 ‘목표 의식’과 ‘패배감’, ‘승리의 희열’, 마지막으로 ‘희망 고문’까지 종합 세트를 굳이 삶으로 가지고 온다. 나중에는 ‘꿈’이 없으면 시체나 좀비가 됐다고 생각된다. 

‘꿈도 없어. 난 쓰레기일지도 몰라!’ 그러나 쓰레기 아니다. 아름답지 않으면 꿈이 아니다. 욕망이나 결핍 충족 욕구일 뿐이다. 그러니 염려 말라. 그리고 아름다운 꿈을 꾸어라. 수억 편의 컨텐츠를 다 보지 않아도 꿈을 만들 수 있으니 염려 말고. 


Top 100은 과연 사람들의 선택을 모은 결과인가? 이 때 우리는 ‘스밍’을 떠올린다. 팬덤이 두터울수록 Top 100에 오를 가능성이 높아지는 시대다. 팬들의 스밍으로 Top100에 오르면 이는 거짓인가, 잘못인가? 스밍도 사용자 선택 아닌가? 순위의 공정성이 내 인생에 미치는 영향은 아무 것도 없는데 굳이 공정한 순위 집계에 목소리를 더한다. 돈을 주고 Top 100에 오르는 것은 팬들의 선택이 아니니 제외한다. 하지만 끓어오르는 팬심으로 하루 종일 스밍을 돌리는 팬들의 선택은 선택일 것이다.


만일 Top 100이 대중의 선택이라면, 따라가도 될까? 나의 선택도 대중의 선택에 포함된다. 나의 선택은 Top 100의 부분집합이다. 나와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이 많을 때 내가 선택하지 않은 컨텐츠가 더 높은 순위에 오른다. 대중의 선택과 나의 선택은 얼마나 다른가? 나와 다른 대중의 선택을 따르면, 이는 나의 개성을 져버리고, 인형이 되어 버리는 일인가? ‘대중의 선택을 따른다’는 나의 선택인데도.


“강요했어”, “위협했어”, “그것 밖에 없었어”는 선택의 원인이지 “타인의 선택”이 아니다. 내가 그것을 선택하면, 원인이야 뭐가 됐든, 나의 선택이다. ‘이것은 나의 선택이 아니야’가 아니다. “죽을 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나의 선택이야?” 음... 두려움이 큰 것이겠지, 스릴러 찍고 있는 것도 아닌데. 물론 그럴 상황은 있을 수 있지만, 일어났음을 뉴스로도 봤지만, 지금 이 경우는 아니지 않나? 변명이 너무 이타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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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 100에 오른 컨텐츠는 그냥 시.청.하면 그냥 시.청.이 되는 컨텐츠들이었다. 오히려 듣지 않던 장르인데 들을 만한 곡을 만나면 해당 장르의 다른 음악을 찾아보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나의 컨텐츠 시.청. 폭이 넓어지는 계기가 된다. 


“이걸 보지 않으면 대화가 안 돼!” 

공부할 시간마저 죽이고 인기 프로그램 앞에 붙어 앉아 있다. 과연 그 대화 주제는 얼마나 빈번하게 등장하나? 하루에 한 번은 Top100에 속한 컨텐츠 이야기를 정기적으로 하나? 

불시에 나타날 것이다. 그럴 때 몰라서 대화에 들지 못하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몇 번 그런 일을 겪으면 자연히 Top 100 대화에서 친구(?)들이 나를 배제하나? 그게 친구인가?

대화는 말을 주고받는 것 외에 듣는 것과 추임새도 포함한다. 모든 화제에 입을 벌리고 싶은, 안달 난 마음일 뿐이다.


이렇게 말도 탈도 많은 Top 100 시.청..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라 갈 것인가? 굳이 그 중 기호에 맞는 몇 곡만 선택할 것인가?


우리 시대의 전문가 분류는 세분화됐다. 그 분야가 직업인 사람들, 프로듀서, 작자, 실연자가 있다. 그 분야를 오래 공부하고 연구한 사람들, 기자, 평론가, 박사가 있다.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잘 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 DJ, VJ, Streaming Jockey가 있다. 신문, 방송에 이어 블로그와 미니홈피, 이젠 동영상 공유 플랫폼에 이르기까지 세상에는 많은 전문가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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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레시피는 ‘수원 왕갈비’ 레시피인가? 트레일러와는 다른 내용과 구성. 그들의 추천은 권유인가 스포일러인가?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오히려 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굳이 세세히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된 경우다. 안 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보는 경우가 있다는 의미다. ‘이미 봤는데, 재생’, ‘못 봤는데, 재생’. 호기심이 생길 때도 있다. 덕분에 동영상 공유 플랫폼에는 4명의 Streaming Jockey가 구독 되어 있다.


이들을 따라가도 될까? 뒷광고니 앞광고니 말도 탈도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까?


정주행이란 ‘원래 예정하거나 목표 했던 것을 이루기 위해 단계를 밟아 앞으로 나아가다’란 의미를 지닌다. 요즘은 시리즈물을 이어서 다 보기란 의미로 통용된다. 영화 시리즈, 드라마 시리즈, 다큐멘터리 시리즈 등. 스트리밍 사용자들의 대표적인 시청 방식이고, 시리즈를 이어보는 사용자가 많다는 넷플릭스의 논평도 있었다. 정주행을 보다 예술적으로 접근하는 방식도 있다. 감독, 배우 중심으로 이어보는 ‘작품 감상’의 개념. 촬영 감독, 음향 감독 등 전문 스텝을 중심으로 이어보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는 박스 오피스에 소속된 컨텐츠도 있고 예술로 분류되는 컨텐츠도 있다.


순위로 정리된 리스트, 전문가가 추천한 컨텐츠, 정주행 보기. 당신에게 주어진 2시간의 여유를 어떻게 채울 것인가? 정주행은 2시간 이상이 걸리긴 하지만 시작은 할 수 있다. 순위든, 전문가 추천이든, 정주행이든 이는 단지 계기일 뿐이지 않나? 삶을 힘들게 하는, 영향력 큰 요소 중 하나가 ‘본인의 생각’이다. 생각 없이 남을 따라하는 것은 아니다. 친구가 지게를 지고 장에 가면 나도 지게를 지고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그런다 해도 이는 나의 선택이다. 인지 여부와 상관없이 이유가 분명히 있다. ‘좋아 보여’ 이것도 이유가 된다. 이론적이고 체계적이며 논리적인 사유를 만든 다음에 선택한 것만이 선택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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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두려움이나 불안함을 느끼는 대상 중 실제로 그런 것은 많지 않다. 인간의 상상이 공상이나 망상이 되는 경우도 많다. 관심이 끌렸는데 굳이 ‘공정성’을 따져 손을 놓는 경우도 많다.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의 전환 순간은 되돌아갈 수 없는 고개를 넘은 시점이라고 한다. 내가 컨텐츠를 보게 된 순간, 그 순간을 만든 계기는 Top 100, 전문가 추천, 무엇이든 가능하다. 오늘은 Top100으로 가볼까, 오늘은 전문가 추천으로 갈까? 추천 리스트 중 맨 처음에 있는 걸 보자. 이렇게 해도 당신 인생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 더구나 이는 생각 없이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왜? 계기로 내가 선택한 컨텐츠가 Top 100이나 전문가 추천 목록에 있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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