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에 미래는 없다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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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는 세상 모두를 담고 있지 않다. 교과서는 과거를 담는 그릇이다. 이미 발견된 것, 알아낸 것, 누군가 이해한 것을 담는다. 다가올 미래는 담겨 있지 않다. 그래도 주눅 드는 법이 없다. 오히려 교과서는 우리에게 미래를 열라고 한다. 이미 공인된 내용을 알려 주었으니, 이를 밟고 미래로 나아가라고 한다. 미래에 대해서 한 마디도 하지 않으면서. 어쩌면 교과서는 과목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역사책인지도 모른다.

학교에서 한 행동은 교과서의 내용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과제였다. 교과서가 세상의 전부였다. 알지 못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교과서 그대로 나온 문제든, 응용문제든 문제의 뒤에는 교과서가 서 있다.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참고서를 봤다. 참고서에도 과거만 있다. 더 상세한 역사가 들어 있다. 교과서 내용을 설명하고, 그 내용에 관한 보충 설명까지 담은 참고서는 교과서보다 두껍다. 참고서가 말이 많아진 이유는 교과서가 친절하지 않아서다. 교과서가 보다 친절하다면, 관련된 보충 설명까지 담고 있다면, 참고서가 필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교과서는 모든 학교 교재의 기본이라는 귀족이다. 왕족에 가깝다. 교과서 두께 더하기 참고서 두께가 우리가 읽고 이해할 내용이다. 참고서를 보다보면, 교과서에게 ‘왜 그 때 말하지 않았어?’라는 원망이 생긴다. 참고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칠판에 판서를 하며 요약정리를 하고 설명을 할 교사도 필요로 한다. 교과서는 친절하지 않고 부족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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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데도 우리는 교과서를 가장 먼저 집어 든다. 교과서의 유일한 역할이 ‘처음을 여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하고 싶은 것이 하나 이상은 있다. 하고 싶은 일의 문을 열 때 교과서가 필요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그 분야로 들어가야 한다. 그 분야에 들어가 그 세계에서 매몰되지 않으려면 그 분야를 알 필요가 있다. 그 앎의 시작이 교과서이고, 교과서 정도의 앎이 있어야 그 문을 열 수 있다. 설명이 친절한 참고서만 보면 되지 않겠나? 굳이 콧대 높은 교과서를 가장 먼저 볼 이유는 무엇인가? 이 역시 계층 구분이다. 중심은 교과서로 정해져 있고, 참고서는 ‘참고’용이지 교과서가 아니다.

이렇게 교과서의 권위가 높다보니, 어느새 교과서의 내용이 내 나아감을 제어하는 틀이 된다. 인류가 지구에 나타나 문화를 만들어 가면서, 셀 수 없이 많은 발견과 이해를 축적해 왔다. 전쟁으로, 상대측에 타격을 입히기 위해 불에 타 없어진 기록도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견과 이해는 멈추지 않았고, 사라진 부분을 새로운 내용으로 메꿔왔다. 발견과 이해의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용어가 정의되고, 분류가 수립됐다. 어떤 것은 이론, 어떤 것은 가설로 규정 됐다. 그 내용을 교과서를 통해 배운다. 하지만 그 내용이 틀이 되어 버린다. 벗어나면 안 될 경계선이 되어 버린다. 단지 발견과 이해를 설명하기 위해 정해진 용어, 분류, 이론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규칙’이 됐다.

청춘은 시기와 시간에 상관없이 스스로 생각하는 기간이다. 스스로 생각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발견과 이해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관찰하고 감각한 내용이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과 혼합된다는 이야기다. 즉, 새로운 정의, 분류, 이론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이다. 세상에는 유사한 사례가 있지만, 동일한 사례는 없다. 누군가의 성공은, ‘그 사람’이 ‘그 상황과 시기’에서 ‘그 자원’을 활용해 달성한 결과다. 따라서 사람, 상황, 시기, 자원이 같을 수 없으므로, 그 성공 방법이 ‘내’ 성공 방법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정의, 분류, 이론은 설명의 수단이며, 우리가 준수할 규칙이 아니다. 상황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고, 당사자도 모두 다르다. 따라서 스스로 생각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청춘은 교과서의 틀 안에 머물 수 없다. 물론 머물 수도 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그 틀에서 벗어나야 할 순간을 만난다. 교과서의 틀을 기준으로 삼고, 그에 벗어나는 사안은 무시, 제거하면 어느 정도는 머물 수 있다. 그러나, 역사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시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문제가 등장하고, 그 문제를 교과서의 틀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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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로 하고자 하는 분야의 시작을 알고, 분야 내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그 과정에서 문제를 만나고, 스스로 생각하여 결정, 선택하고, 그 결정과 선택에 따라 행동할 때 교과서가 아니라 자신을 떠올려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의 질문은, ‘나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의 질문을 내포하고 있다. 교과서만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 혼란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망연자실 서 있지 말고 자신을 떠올린다.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기 위해 스스로 생각한다. 그 결과가 미래다. 교과서에는 미래가 없고, 자신의 정체성을 나침반으로 하여 선택과 결정과 행동을 하면, 나의 미래가 만들어진다. 

그 누구도 이렇게 한 적이 없다는 듯, 위의 이야기가 이해될 수 있다. 아니다. 적어도 성공이라는 목표점에 도달한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했다. 사고의 유연성, 자신에게 맞는 방법,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적합한 길로 걸어가면 성공에 다다를 수 있다. 대중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가수를 ‘가왕’이라고 정의해 보자. 지금까지 여러 가왕이 등장했다. 모두 같은 방법으로 가왕에 이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장르를 세우고 이를 갈고 다듬은 가수가 가왕이 됐다. 조용필과 서태지가 다르고, 김건모와 아이유가 다르다. 단지 음악의 장르만 다른 것이 아니다. 표현이 다르고, 노래로 전하는 내용이 다르다. 물론 이들은 창작의 세계, 대중 선호의 세계에 속해 있으니, 그들이 하는 일은 우리 일반인과는 다르다. 그러나 디자인이 다르다고 A는 옷이라 부르고 B는 가리개로 부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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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은 스스로 생각하는 시기다. 스스로 생각할 때 틀 안에서는 미래를 열 수 없다. 교과서가 그 분야의 문을 여는 열쇠라면, 그 분야에서 자신의 왕국을 세우는 도구는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스스로 생각해 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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