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서 나뉘다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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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離別)의 한자 구성은, '離 떠날 이(리)'와 '別 나눌 별'로 구성된다. 떠나서 나뉜다는 의미다. 발음할 때 장음은 '이'이다. 누군가 떠나 함께 하던 이가 나누어지는 것을 이별이라고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별은 오랜 시간(상대적 감각이긴 하다) 함께 하던 중 어떤 이유로 모두, 혹은 누군가 '함께'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상황일 것이다.


이별 후에 겪는 고민과 고뇌의 원인은 사례마다 다르겠지만, '익숙함'과의 싸움도 포함되지 않을까? 연인이 되는, '오늘부터 1일'이후 가장 빈도가 높아지는 행동은 연락과 접촉이다. 회사원을 기준으로 보면, 대부분 '잠자기 전 통화'는 거국적 규모다. 이동통신 회사가 연인 간 잠들기 전 통화로 매출의 대부분을 만드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다(물론 아니겠지). 헤어지고 나면, 매일 하던 잠들기 전 통화가 멈춘다. 연인일 때 숨쉬기처럼 해서 특별한 활동이라 느끼지 않게 됐지만, 막상 그 활동이 중지되면 한동안 스마트폰을 쳐다보게 된다. 자, 고뇌의 시작이다.


익숙함이 비단 잠자기 전 통화만 있을까? 적극적인 사람은 새벽에 집을 나서 연인과 함께 출근을 도모할 것이다. 퇴근은 철야 야근이 없다면 당연히 만나는 시간이다. 함께 출근이 없더라도 매일 저녁이면 함께 있다. 만일 한쪽이 자취나 독립해 생활하고 있다면 데이트 장소는 카페, 레스토랑, 극장, 쇼핑 외에도 연인 집 가기가 포함된다. 그렇게 매일 365일 만나던 시간이 사라진다. 이별은 소멸의 씨앗이다. '함께'라는 단어와 묶일 수 있는 모든 활동을 소멸한다. 그러니 '옆구리가 시리다'라는 표현을 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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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함과의 싸움 외에 이별 후 부딪히는 고뇌 혹은 고민은 '해도 될까, 안 될까?' 혹은 '할까, 말까?'의 고뇌다. 이 고뇌를 낳은 친부모는 '익숙함과의 싸움'이다. '만남'과 '함께'가 채우고 있던 시간과 공간이 이별로 비었다. 결핍은 욕구를 낳는다. 결국 그것을 채우려 한다. 이별을 결심했을 때 이런 고뇌나 고민까지는 예상 못 했어도 헤어짐 이후 집중할 분야를 정한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의 '고뇌 유예 기간'이 있다. 하지만, 이별 이후 느낀 감정이 억울함이든 당연함이든, 회상은 필수다. 상기 기억이든 비상기 기억이든, 상기할 계기가 있든 계기가 없이 떠오르든 상기는 모든 이별 연인이 거치는 필수 과정이다.


상기의 기간이 길든 짧든, 중요한 것은 상기 이후이다. 상기된 후 피식 웃고 지나친다면 모를까, '궁금해지면' 두 번째 고뇌 혹은 고민이 시작된다. '해도 될까, 안 될까?' 혹은 '할까, 말 까?'의 고뇌 혹은 고민 말이다. 예를 들면, 헤어진 연인의 'SNS에 방문할 까, 말 까?'이다. 상기 이후 궁금해진 것이다. 자신과 헤어진 후 어떻게 지낼지. 즐거움, 기쁨, 행복함의 기록인 SNS에 이별 후 술로 폐인 된 자신의 모습을 올리는 이는 없다. 헤어진 연인의 SNS에 방문하기로 한 후, 이별 이후 업데이트된 내용이 없으면 상대가 이별을 겪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안심이 마음을 채운다. 만일 동성 친구와의 즐거운 자리, 평소 올리던 취미 생활, 관심사 등 업데이트가 있으면 화가 난다. 방문하지 않음만 못하게 된다.


왜 '할까, 말 까?'의 고뇌가 생길까? 포스트 방문은 방문자 ID가 남지 않는다. 스토리라면 모를까. 그냥 방문해도 흔적은 남지 않는다. '헤어졌는데...'라는 생각, 헤어진 것이 접근 금지 명령도 아니지 않나? 크게 싸우고 헤어졌더라도, 그것은 순간의 감정. 흥분해서 상대의 결점이나 단점 외에는 보이지 않던, 오래간만의 어린 자아가 튀어나온 순간의 결정일 뿐이다. 헤어진 후 시간이 지나면, 상대의 장점이 생각날 것이다. 장점이 있으니 오랜 기간 매일 만났을 것 아닌가? '이런 점이 있었는지 그때는 몰랐어. 알았다면...' 이런 생각이 무슨 소용인가? 만났고 애정을 나누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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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다. 코어 스트레칭 중에 두 손과 두 무릎을 바닥에 대고 척수를 위로 동그랗게 만들고 아래로 오목하게 만드는 동작이 있다. 숨을 들이쉬며 척추를 오목하게 만들면 등 쪽 척추 마디가 서로 만난다. 숨을 내쉬며 척추를 위로 볼록하게 만들면 등 쪽 척추 마디는 서로 헤어진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다. 사람의 관계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수십 년을 함께 산 부부도, 죽음을 향해 살아가는 인간이므로, 언젠가 헤어진다. 만남과 이별은 직선의 양쪽 점과 같은 것이다. 그 선이 길지 짧을지는 당사자가 할 일이다.


헤어진 연인과 술을 마셔보면 상대는 언제나 '악'이다. 화자에게는 '나는 지금껏, 악인지 모르고 사귀었어'라고 들린다. 누가 바보인가? 바꿔보면 상대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사실을 말하자. 우리는 결코 악을 구별하지 못하고 사귄 것이 아니다. 너무 쉽고 빠르게 결정을 내렸을 뿐이다. 탐색전 없이 바로 결심을 했을 뿐이다. 이것은 체중을 늘어나는 데도 입의 말을 들어 음식을 계속 먹는 것과 같다. 입에 단 음식이니 바로 먹을 수밖에. 침이 입안에 고이는데 참을 수 없었을 수밖에. 그런 것이다. 세상에는 악한 이는 없다. 사고방식이 타인에게 해를 입히고도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다. 상대가 준 불편은 그 행동이나 말이 나에게 불편을 끼치는지 모르고 행한 행동일 뿐이다.


말이 길었지만, 헤어졌으니 우리는 결정해야 한다. 지질하게 견딜지, 명확하게 분석하고 인정할 것은 인정할지. 마음의 짐을 얼마나 짊어질지도 자신에게 달려 있다.




#음악추천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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